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아름답다. 교향곡 '비창', 발레곡 '백조의 호수'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곡이지만, 그 선율 속에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 바로 우수와 애잔함인데 그의 정신세계의 표현과 다름없다. 그는 평생 우울증과 불안,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그 이유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1868년 28세의 청년 차이코프스키는 누이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베라만큼 훌륭한 여자는 없다. 그런데도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다니, 나는 비열하고 은혜를 모르는 놈이다. 너무 괴롭구나….' 그는 여자와는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몸부림쳤고,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몹시 부끄러워했다. 죄의식과 자기혐오, 세상에 알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의 내면을 지배했고 그것이 음악을 통해 적나라하게 나타난 것이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도 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멋쟁이였다. 그런 그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대학생, 귀족 등 젊은 남성들과 사귀다가 19세기 말 최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동성연애 혐의로 2년간 수감되면서 모든 명예를 잃었고, 파리로 망명해 비참하게 죽었다.
과거에는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생을 망치곤 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 남자 탤런트가 커밍아웃을 하면서 "부모님 죄송합니다"라고 울부짖던 기억이 난다. 그는 장시간 TV화면에서 사라지는 시련을 겪었다. 현재도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떳떳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 영화계의 한 유명 인사가 동성 애인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결혼 계획을 밝혔다. 둘의 공개적인 키스 장면이 충격적이었다는 얘기가 많았다.
필자는 2년 전 미국인 동성 커플과 외국 연수를 함께 간 적이 있는데 일행 모두가 그 둘을 대할 때에는 어색하고 불편해했다. 일행 모두 개방적인 언론인들인데도 그 커플을 보고 계속 뒷말을 해댔다.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수용하려면 정말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동성 커플이 자신들의 권리와 실체를 앞세우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 필자도 고루한 보수주의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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