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건강한 몸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제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이라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성(理性)을 주제로 한 예술 조각품을 볼 때면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정신을 주제로 한 작업에 왜 하나같이 그토록 몸을 강조하는 것일까? 대표 작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근육질의 몸이다. 운동선수 출신을 모델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운동선수처럼 근육질의 건강한 몸이면 건강한 정신이 저절로 따라온다는 뜻일까? 인디언들은 길을 가다 가끔씩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다본다고 한다. 건강한 몸이 저 혼자 앞서 가느라 정신을 놓치는 일은 없을까 염려되어서다.

몸이 이성을 앞지르는 경우는 일상생활에서도 경험한다. 전문직 여성 클럽에서 '차세대 전문직 여성 세미나'를 열었을 때의 일이다. 학교장으로부터 고교별로 2, 3명씩 추천받은 모범 학생들이 연수 대상이었다. 대상 학생들도 만만치 않았지만 주최 측에서도 다년간에 걸쳐 연구 개발된 프로그램들을 선보여 대내외적으로도 호응도가 높았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성공여성들도 초청했을 뿐 아니라'내가 만약 여성 대통령이라면'과 같은 열띤 토론 프로그램도 있었다. 포상 내용도 물론 파격적이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상태였다.

행사가 끝날 무렵 우리는 색다른 프로그램을 하나 선보였다. '쉘 위 댄스' 시간. 무용을 전공한 멤버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말없이 학생들이 좋아하는 몇 가지의 댄스 동작을 선보였다. 폭발적인 함성이 강당에 울려 퍼졌다. 시작을 알리는 '큐'가 나가자 음악이 울리고 학생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악과 춤, 아우성, 흥분.

순식간에 강당은 젊은 몸들로 뜨거워졌다. 모든 학생이 갑자기 정돈되고 단결됐다. 머뭇거림도 뒤처짐도 보이지 않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물이 되어 함께 흐른다고나 할까? 바닷물이 파도를 이루며 숨 가쁘게 바위를 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지구 상에 오로지 그들만의 우주가 새롭게 형성된 듯했다. 몸 풀기로 제공한 '쉘 위 댄스' 프로그램으로 인해 공들였던 앞 프로그램들이 깡그리 지워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했다. 어째서 그 좋은 프로그램들을 제치고 가장 돈 안 들고 즉흥적인 '쉘 위 댄스'가 저토록 학생들을 사로잡느냐고. '몸이잖아, 몸!' 옆에 앉은 행사단장이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그러니까 남편이 첫사랑을 평생 동안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하룻밤 몸 섞고 오는 것은 못 참는 법"이라고. 기막힌 대답에 폭소가 터졌다. 몸의 권력이고 배반이다.

小珍 /에세이 아카데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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