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골치 아픈 건 싫어" 대학가 토론·논쟁이 사라진다

게시판에 대동제·동아리 행사 '빼곡'…중고교 역사교육 부재 탓

22일 계명대학교에서 대구시 여성회관 성매매피해상담소 민들레 회원들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축제가 한창인 캠퍼스를 돌며 성매매 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대학생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22일 계명대학교에서 대구시 여성회관 성매매피해상담소 민들레 회원들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축제가 한창인 캠퍼스를 돌며 성매매 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대학생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학가에서 토론'논쟁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22일 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대구대 등 지역 4개 대학의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들어가 봤다. 대부분의 게시판들에는 앞으로 있을 대동제 행사 안내글이나 학교 내 동아리 또는 학내외 단체들의 행사 관련 글 등이 올라와 있었다. 게시판 성격에 따라 학내 사안에 의견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관한 논쟁 등 주요 사회 이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글들은 없었다.

강모(30) 씨는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만 해도 탄핵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논쟁이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서 팽팽하게 맞서 밤을 새워가면서 봤다"며 "충분히 논쟁이 벌어지고 토론을 벌일 만한 주제들이 쏟아지는데도 대학 내 온라인이 조용한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최근의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한 논쟁 등 사회 이슈와 관련한 토론이 벌어지는 공간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날 한 대학의 대동제 기간 행사들을 살펴봤더니 대부분 주막과 음악공연으로 채워져 있었다. 대동제 행사를 제외하고도 대학 현수막에 걸려 있는 여러 행사들 중 역사 인식 문제에 관한 토론회 행사는 없었다.

전현수 경북대 교수(사학과)는 "10년 전만 해도 100명 정원의 한국사 교양강의가 40개 이상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사 교양강의가 20개 안팎으로 줄어든 데다 가장 인원수가 많은 강의가 50명 정도"라며 "그만큼 대학 사회 안에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처럼 대학가에서 역사에 관한 토론과 논쟁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로 대학생과 교수들은 중'고교 역사 교육의 부재를 든다. 역사에 관한 교육을 처음부터 제대로 받지 못하다 보니 논쟁을 벌이려 해도 지식 부족으로 논쟁을 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 대학생 이모(21) 씨는 "역사를 제대로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여기서 더 깊게 고민하는 것에 대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게다가 역사가 대학생들의 당면과제라 할 수 있는 취업과 스펙 쌓기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느끼는데 굳이 논쟁의 판을 만들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인터넷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생각보다 훌륭한 논쟁의 장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인터넷과 SNS로 지식을 접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결국 다른 시각을 접할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한 대학생은 "최근에 아버지의 페이스북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식이 전혀 '딴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었다"며 "결국 개인이 원하는 내용만 걸러 접하고 그 내용을 같이 원하는 사람끼리만 이야기하게 되는 SNS의 특성상 논쟁이 일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대학생들의 역사 인식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교육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전 교수는 "지금의 상태는 역사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현 교육 시스템이 불러일으킨 문제"라며 "한국사 수업을 필수 교양과목으로 지정하거나 고시나 공무원시험에 한국사 시험을 더 강화하는 등 지금이라도 교육 정책이나 시스템을 담당하는 쪽에서 올바른 역사 교육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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