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태흥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빅토르 하라의 망각수의 노래

빅토르 하라(Victor Jara)의 망각수의 노래(Cancion del arbol del olvido)

1973년 9월 16일, 칠레의 산티아고 경기장에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한 남자가 끌려나왔다. 이미 산티아고 경기장은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칠레의 많은 국민들이 감금되어 있었다. 무장한 군인들은 마치 그들의 권력이 부정한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한 곡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모두들 따라 불렀다. 당황한 군인들은 그 노래를 선창한 남자를 끌어내고 개머리판으로 짓이겼다. 그리고 그가 가수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가락과 손목을 부러뜨리고 혀를 잘랐다. 그리고는 그것도 모자라 그의 몸에 44발의 총알을 난사했다. 그날 그렇게 칠레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는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날은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 굶주림에 허덕이던 민중과 영양실조로 고통받던 어린이들의 사회복지정책 실현을 위해 개혁정치를 펴던 살바도르 아옌데 고센스(Salvador Allende Gossens) 대통령이 쿠데타로 최후를 맞이한 지 5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의 사회주의적인 개혁정치로 특권을 누리지 못할 것을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네슬레 등)은 두려워했다. 그들에게 영혼을 판 칠레의 부패한 군인 피노체트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고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저항하던 아옌데가 소총으로 자살하자 군부는 그의 시신마저도 목을 자르고 장기를 파헤쳤다. 그날 이후, 칠레에서는 피노체트라는 악령에 의해 17년간 3천197명이 처형되었고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유없이 불법체포와 감금을 당했으며 1천여 명이 넘는 실종자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공식적으로 그가 남긴 죄악에 불과했다. 아직도 감추어지고 드러나지 않은 범죄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통곡의 강은 멈추지 않고 있다.

2013년 5월, 이 나라의 국가 보훈처는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직곡'을 제창하는 대신 합창으로 대체하였다. 그것은 33년 전, 이 나라에서 자행된 학살의 기억들을 삭제하고 싶은 욕망이 앞섰으나 실현되지 않게 되자 궁여지책 끝에 선택한 결과였다. 국민대통합을 강조한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가한 그날, 보훈처는 결국 통합 없는 통합의 정치를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단 한 곡의 노래를 두려워하는 우리 사회와 단 한 명의 가수를 두려움으로 살해한 칠레는 너무도 닮았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무력으로 국민들의 민주화를 짓밟은 1980년 5월은 칠레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짓밟은 1973년 9월과 또한 정확히 닮은꼴이다. 여기에 5'18민주항쟁을 왜곡하고 그 희생자들마저 조롱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학살자 피노체트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칠레와 그 모습이 판박이다.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다시 쓰려는 무리들의 이유는 단 하나다. 두려움 때문이다. 역사 앞에 당당하지 못한 세력은 자신이 짓밟은 과거의 역사를 늘 부담으로 안을 수밖에 없다. 해서 그 역사의 흔적을 지우거나 아니면 아예 통째로 성형하고 싶어 한다. 그 이유로 그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대중들을 현혹한다. 최근 터져 나온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음모론이 결국 일본의 극우정당과 국수주의들이 무차별적으로 내뱉는 망언과 똑같은 행태인 이유도 바로 그것에 있다.

살아남은 자들과 1등만을 기억하는 사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다. 그리고 결코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피로 목욕을 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피노체트의 말과 "5'18은 북한군 게릴라가 침투해서 벌인 소행이다"라는 종합편성채널의 망동은 그 무게 중심이 결코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는 빅토르 하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도 그들만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지우고 싶은 기억일 뿐이다.

5월이 울고 있다. 그저 이렇듯 가는 봄날이 서러워서가 아니라 행여 다시 올 그 봄날이 두려워 울고 있다. 도서관 계단 위를 꽃가루로 가득 덮던 봄, 살아남은 것을 부끄러워하던 젊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목놓아 부르던 우리의 노래는 또 어디로 사라졌는가? 늦은 봄밤, 빅토르 하라는 노래한다. 아직도 나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노라고.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62guev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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