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철쭉

'붉은 바위 끝에/ 암소 잡은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 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삼국유사 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에 전하는 4구체 향가인 헌화가(獻花歌)를 현대어로 풀이한 것이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중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부근에는 높은 돌산이 병풍처럼 바다에 닿아 있는데, 그 위에 철쭉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좌우의 시종들에게 그 꽃을 꺾어 바칠 자가 없느냐고 물었으나 모두가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마침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老翁)이 꽃을 꺾고 가사(歌詞)를 지어 바쳤다는 내용이다.

철쭉은 한자 이름인 척촉이 변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의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해서 '머뭇거린다'는 의미의 척촉이란 한자를 썼다는 것이다. 수로부인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럴듯한 얘기이다.

철쭉을 개꽃이라고도 한다. 곤궁한 세월이 많았던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먹을 수 있는 식물에는 '참'자를 붙였지만, 먹지 못하는 것에는 '개'자를 붙이곤 했다. 그러니 먹어도 되는 진달래는 '참꽃'이라 부른 반면, 꽃 모양은 비슷하지만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었던 철쭉은 '개꽃'이라고 부른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철쭉꽃에 '연달래'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는데, 진달래가 피고 연이어 피는 꽃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듯하다. 봄꽃의 대명사로 쌍벽을 이루는 진달래와 철쭉은 꽃과 잎이 너무 흡사해 쉬 구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가장 간단하고 확실하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꽃만 있으면 진달래이고, 꽃과 잎이 둘 다 보이면 철쭉인 것이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지만, 철쭉은 꽃이 피는 동시에 잎이 나오기 때문이다.

봄의 전령인 진달래가 연분홍 꽃잎으로 시골 처녀처럼 소박한 자태를 드러낸다면, 봄의 끝자락에 피는 철쭉은 보다 진하고 선명한 빛깔로 도시 아가씨 같은 관능미를 발산한다.

바야흐로 철쭉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시절이다. 영남의 주산인 영주 소백산에도 비로봉과 연화봉, 국망봉 등 철쭉 군락지에 꽃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철쭉 탐승지의 고전으로 통하는 소백산 '산중화원'(山中花園)에서 31일부터 소백산철쭉제가 열린다. 노랫말처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며' 봄은 또 그렇게 속절없이 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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