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는 중간'기말고사 등 지필 평가를 하지 않는다. 대신 학생들의 소질과 끼를 끌어내 적성에 맞는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다양하게 체험 활동을 실시해 행복한 교육을 구현한다.'
정부가 2016년 전 중학교에서 운영한다며 밝힌 '자유학기제'의 정의다. 이를 두고 취지는 좋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체험 장소 등 관련 인프라 부족, 학력 저하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주입식 수업과 상급 학교 진학에 초점이 맞춰진 현재 학교 교육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다수가 동의한다. 특히 학교폭력이 가장 심한 시기라는 중학교의 교육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높다. 비슷한 고민을 해온 일본 경우 중학교 때 직업 현장 체험을 활성화하는 등 진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학기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일본의 사례를 살펴봤다.
◆효고현의 '트라이 야르 위크'(TRY YARU WEEK)
"직장 체험을 하면서 학교에 오는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도 커졌어요."
일본 효고현 고베 시립 타루미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매년 11월이면 5일간 직장 체험을 하고 있다. 효고현이 중학교 2학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트라이 야르 위크' 프로그램이 그것. 체험장은 다양하다. 인근 각종 제조업체와 복지시설, 유치원 외에도 편의점, 슈퍼마켓, 제과점, 미용실 등 소규모 점포에까지 학생들이 다녀간다.
이 학교 이마키타 히로노부 3학년 부장 교사는 "학생들에겐 유치원과 보육원 등을 찾으면 경험할 수 있는 유아 교육 체험이 가장 인기가 좋다"며 "매일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직장 생활에서 어떤 예의를 지켜야 하는지 등을 깨달았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효고현은 일본에서도 진로 교육, 일본식으로 말하면 '종합적인 학습'을 잘하는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곳 중학교 2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진로 교육 프로그램 '트라이 야르(의지나 의식을 갖고 행동한다는 의미의 일본말) 위크'는 단순히 진로 찾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의 보다 큰 목적은 인성 교육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을 겪은 이후 학생들의 인성을 가꾸는 진로 교육에 관심과 열정을 쏟게 됐다. 이곳 사람들은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또 1997년 고베의 한 중학생이 초교생을 살해해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벌어져 전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지자 인성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효고현에서 1998년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효고현 고베시청 산하 교육위원회는 지역민들에게 프로그램 운영 기간 외에도 지역 각 행사에 학생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 지역을 사랑하는 인재를 키우자고 홍보하고 있다.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서는 지역 사회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곳 지도과 중등교육계 스기하라 다카시 주사는 "고베 중학교 1개 학급당 20만엔을 지원하는데 이 비용은 효고현과 고베시가 절반씩 나눠 부담한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던 학생들까지 성취감을 맛보고 자신감,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다.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재일교포들의 둥지 역할을 하는 고베 한국교육원도 이 프로그램에 참가, 지난해부터 2개 중학교 학생들이 직업 체험을 하도록 문호를 열고 있다. 이곳 조미옥 원장은 "고베 곳곳에 지역 사회가 아이를 키운다는 표어가 붙어 있을 정도로 이곳 사람들은 학생들 교육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며 "우리도 지역 사회가 힘을 보태 아이들을 함께 교육하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도쿄도의 '워크 워크 위크 도쿄'(Work Work Week Tokyo)
"아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에요. 사회성을 키우고 건전한 가치관을 갖도록 돕는 겁니다."
도쿄도 아다카와 구립 스와다이 중학교는 매년 30개 이상의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을 강사로 초청해 특강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국가대표 농구선수, 요리사, 은행원, 신문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로부터 매년 3차례씩 중학교 생활 3년 동안 총 9회 강의를 듣고 있다.
이와 함께 2학년 때 직업 현장 체험을 한다. 2학년 학생들은 매년 6월이 되면 한 해 전에 직업 현장 체험을 한 3학년들로부터 직장에서 지켜야 할 예절 등에 대해 조언을 듣는다. 7월에 접어들면 5일간의 현장 체험을 하게 된다. 이후에는 담임교사와 함께 활동 내용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가질 뿐 아니라 토론, 연극, 웅변대회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고 발표한다.
이 같은 활동은 2005년부터 도쿄도가 진행하고 있는 '워크 워크 위크 도쿄'. 학생들이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데 기존의 학교 교육 방식이 얼마나 관련이 있을지, 학교 교육이 즐거움과 성취감을 주고 있는지 등을 고민한 끝에 나온 프로그램이다.
스와다이 중학교의 시미즈 다카히코 교장은 진로 교육의 목표로 인간관계 형성 능력, 정보활용 능력, 미래 설계 능력, 의사 결정 능력 배양을 꼽고 있다. 그는 "진로 교육=직업 교육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 체험은 진로 교육의 일부일 뿐이다. 취업을 목적으로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가치관을 심어주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 이유"라며 "현장 체험 후 아이들은 좀 더 어른스러워지고 나름대로 목표도 갖게 돼 학교생활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워크 워크 위크 도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는 지역 사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지역의 각종 업체, 공공기관, 시민사회단체 등이 학생들을 위해 일하는 공간을 내주고 그들을 가르치는 데 시간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주쿠 구립 요츠야 중학교는 2011, 2012년 신주쿠 지역에서 '지역협동학교' 모델로 꼽힌 곳이다. 지역협동학교는 지역과 학부모, 학교가 함께 아이들을 키운다는 의미에서 붙인 사업 이름이다.
요츠야 중학교는 소방서 등 공공기관과 박물관, 음식점, 문구점, 편의점 등 41개 체험장을 확보 중이다. 학교와 신주쿠구 교육위원회 관계자, 학부모, 대학교수 등 전문가, 지역 주민 대표 등 18명으로 구성된 학교운영협의회가 체험장 발굴을 주도하고 있다.
이 학교 1학년은 5, 6명씩 짝을 이뤄 직업 현장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회를 갖는다. 현장을 체험하는 것은 2학년 때. 인사 등 기초 예절 교육을 받은 뒤 3일 동안 현장 체험을 하고 그 활동을 정리한다. 3학년이 되면 지역 문화를 접하며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도록 한다.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스이치 나가사키 교사는 "대부분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대인 관계가 넓어지고 일하는 기쁨을 맛봤다고 한다"며 "이 프로그램이 판단력, 사고력, 표현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돼 학습 능력을 높이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일본에서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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