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개성을 존중하거든요. 민주화하지 않아요." 유명 걸그룹 멤버의 '민주화' 발언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이게 무슨 말일까?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민주화가 무슨 상관일까?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민주화'라는 단어가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라는 사이트에서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비추천'을 뜻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하고 황당했다. 이 걸그룹은 발언의 후폭풍으로 각 대학 축제 공연이 취소되고, 공연에 앞서 눈물의 사과를 하고 다닌다고 하니 말 한마디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또 얼마 전에는 우리 동네 대형마트에 시끌시끌한 일이 발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합성 사진이 매장에 진열된 TV화면에 노출된 것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발칵 뒤집은 이 사건은 마트 내에 있는 이동통신사 판매점에 일하는 계약직 사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일베'에 올리려고 그랬다고 한다. 경찰에 연행되고, 당장 해고하라는 요구가 쏟아졌으니 치기 어린 장난치고는 이 또한 후폭풍이 컸다.
최근 곳곳에서 '일베'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는 법적 대응과 광고 중단 운동부터 사이트 폐쇄 이야기까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극단적이고 선정적인 표현과 폐륜적 막말은 기본이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게는 '좌좀'(좌파 좀비), '종북'의 딱지를 씌워 집단 린치를 가한다. 죄책감 없는 살벌한 신상털이는 일베의 놀이문화이다. 오죽하면 일베 유저를 가리켜 '일베충(蟲)'이라 부르겠는가.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들은 자신들을 '애국보수'라 지칭하고 유저 다수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청소년이라는 점이다.
특정 정치이념은 차치하더라도 그릇된 역사관에 기초한 악의적인 게시물을 보고 있자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그들의 광기는 끝을 모르고 달려가고 있었다. 아들의 주검 앞에 오열하는 어머니의 사진에 '아이고 우리 아들 택배 왔다'고 제목을 달고, 계엄군에 희생된 시민들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홍어 무침'에 비유한다. 1980년 빛고을 광주의 치열한 항쟁이 진상 규명되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돌아 여기까지 왔건만 3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왜곡, 날조되고 있는 현실은 참담함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일베'라는 '괴물'의 등장을 무작정 탓할 수 없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을 만든 것이 주한미군에 의해 한강에 방류된 독극물이듯, '일베'를 만든 것도 우리 사회의 독극물이다. 종합편성채널에서는 언론의 책임과 역할은 온데간데없는 5'18 왜곡보도를 쏟아낸다. 광주시민을 폭도로 모는 이들의 논리는 일베의 논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 대선 당시 진보 성향 사이트 댓글 공작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국정원에서는 일베 회원 일부를 안보 특강에 초청했다. 악플 달기 교육을 했을까? '좌빨종북' 척결을 사명으로 여기는 모습에서 국정원과 일베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다. 동조 혹은 방조하는 언론과 국가기관은 '일베'라는 괴물을 만든 장본인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역사의식 부재는 괴물을 만든 치명적 독극물이다. 김구 선생 사진을 보고 옆집 아저씨라 답하고, 도시락 폭탄은 안중근 선생이 던졌다고 말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입시 위주 우리 교육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 역사 속에 교훈을 찾고 과오를 범하지 않는 것은 툭하면 OECD 몇 위니 하는 경쟁력보다 훨씬 중요한 진짜 국가 경쟁력이다.
망언을 내뱉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과 극우정치인들의 모습에 우리는 분노를 한다.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정치적 이익만을 취하려는 모습은 분명 잘못된 모습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그렇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역사 속에 '죽은 자'가 '산 자'에게 간절히 원했던 것은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는 것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5'18 당시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마지막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연설이자, 오늘날 우리가 다시 되새겨야 할 가치이다.
박석준/함께하는 대구청년회 대표 adultbaby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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