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일에 도움된다기에 허락했더니 이제 평생 농사도 못 짓게 될 판입니다."
포항시 남구 유강리의 한 마을. 이곳은 8개 농가가 6만여㎡의 땅을 일구며 대대로 벼농사를 짓는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요즘은 모내기 철이라 일 년 농사 준비를 위해 한창 분주해야 할 시기지만, 이 마을 주민들은 논을 보며 한숨만 내쉬기 일쑤다. 공사판에서 가져온 떡돌(돌처럼 뭉친 질퍽한 흙)과 자갈이 섞인 흙이 논을 가득 메운 탓에 물대기는커녕 모 한 포기 심을 수 없는 땅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의 옥토가 황량한 벌판으로 변해버린 것은 포스텍 4세대 방사광 가속기 건립 현장에서 나온 흙(100만㎥)이 채워지면서부터이다.
포스텍 4세대 방사광가속기 시공사인 포스코 건설은 올 초 이곳 부지 정지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량의 흙을 처리하기 위해 하도급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체의 업무를 맡겼다.
이 하도급업체는 올해 2월 농사를 위해 농지 성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유강리 농가를 찾아 성토를 제안, 농민들과 윈윈 차원에서 무료로 성토계약을 맺었다. 업체는 흙을 처리할 수 있어 좋고, 주민들은 성토를 통해 밭농사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다는 판단에 계약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성토가 끝난 4월 농민들은 공사현장에서 나온 흙에 떡돌과 자갈 등이 너무 많아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곳 주변 농지는 농사에 사용할 수 없는 흙이 2m가량 쌓여 있을 뿐만 아니라 농로와 배수로 등도 흙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이곳이 농지였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다.
주민들은 시공사 및 하청업체 등을 대상으로 민원 제기 및 피해보상을 위한 민사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다.
주민 박은채(55) 씨는 "마을주민 모두 올해 농사를 포기했다. 이 땅을 다시 일구려면 몇십 년이 더 걸릴지 모를 일이다. '성토 후 농지를 재정비해주겠다'는 업체의 말만 믿었는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상수(87) 씨는 "성토를 한 시공사에 따졌더니 '땅은 다져놓았으니 된 것 아니냐. 법대로 하라'며 도리어 면박을 줬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하도급업체에 모든 일을 일임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하도급업체를 불러 개선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도급업체 관계자는 "성토작업 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비토작업을 모두 마쳤다. 주민들이 작업을 한 뒤 미진한 부분에 불만을 가진 것 같은데,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포항'박승혁기자 psh@msnet.co.kr
신동우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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