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23> 숲과 폭포로 만나는 포항

12 폭포 품은 내연산, 토종식물 '보고' 수목원…영일만 언저리의 힐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포항까지는 7번 국도로 연결된다. 도로는 단순하지만 시내버스 길까지 편안한 건 아니다. 영덕에서 포항으로 넘어가려면 '영덕-부경온천'행 버스를 탄 뒤 부경온천에서 내려 포항 시내버스 청하지선 지경리 경유 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부경온천으로 가는 영덕군 시내버스가 하루 3회, 지경리까지는 포항 시내버스가 하루 3번 들른다. 오전 9시 장사해수욕장에서 부경온천행 버스에 올라탔다. 부경온천까지는 15분이면 넉넉하다. 하지만 포항 시내버스 청하지선으로 갈아타려면 꼼짝없이 오후 1시 15분까지 기다려야 했다. 온천 주변은 허허벌판이고 지경리 쪽으로 걸어와도 두 다리를 쉴 곳이 없다. 송라면 소재지까지 걸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참았다. 어쨌든 교통수단은 시내버스니까. 지경리에서 청하환승센터까지는 40여 분이 걸린다. 버스는 곧은 길을 두고 바다가 보이는 좁은 해안도로를 구불구불 달린다.

◆내연산의 속살을 걷다

오후 2시 20분쯤 청하환승센터에서 510번 버스로 갈아타고 내연산 보경사로 향했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문덕리에서 보경사 주차장까지 버스가 하루 9회 운행한다. 주차장에서 내리는데 중년의 여성 등산객들이 무더기로 모여 있다. 올해 대한민국 아줌마 여름 등산복은 연두색과 노란색이 대세인가 보다. 처음 봤을 때는 단체 여행객인 줄 알았다.

보경사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진 흙길이 나타난다. 절 주변에 가득한 은은한 아카시아 꽃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절 마당에 들어섰다. 석가탄신일은 지났지만 절 마당에 가득 걸린 알록달록한 연등이 방문객을 맞는다.

보경사는 602년(진평왕 25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 법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하고 보경사라고 했다. 보경사원진국사비(보물 252호)와 보경사부도(보물 430호)가 유명하고 조선 숙종의 친필 각판 및 오층석탑 등이 있다.

내연산 청하골은 12개 폭포를 품고 있어 '12폭포골'이라고도 부른다. 12개의 폭포가 등산로를 따라 줄줄이 이어진다. 보경사에서 연산폭포에 이르는 등산로는 편도 2.4㎞ 구간으로 짧고 경사도 완만해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12폭포 중 가장 풍광이 아름답다는 관음폭포와 연산폭포를 보고 오기로 했다.

보경사를 지나면 시멘트 배수로를 따라 계곡물이 정신없이 흘러간다. 등산로는 계곡과 나란히 쌍을 이루며 이어진다. 바윗길이 대부분이라 발바닥은 좀 아프지만 가파르진 않다. 비탈이 있는 곳에는 데크나 돌계단이 있어 쉽게 걸을 수 있다.

길 위로 초록빛 그늘이 지고 청량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평일인데도 등산로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등산객들은 목줄기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연신 "으~시원하다"를 연발했다. 보경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문수암 갈림길이 나온다. 계속 길을 따라 오르면 산이 점점 깊어진다. 처음 만나는 폭포는 상생폭포다. 폭포 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데 왼쪽에 솟은 바위가 기화대, 폭포수가 고인 소(沼)는 기화소라고 부른다. 폭포 앞 그늘에 모여앉아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한가롭다. 상생폭포를 지나며 보현폭포, 삼보폭포, 잠룡폭포, 무룡폭포를 차례로 지난다. 하지만 숲에 가려져 있어 누가 가르쳐주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무룡폭포를 지나면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관음폭포와 마주친다. 관음폭포 위를 지나는 출렁다리를 건너면 연산폭포다. 구름다리 위에서 폭포의 전경을 내려다보니 두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연산폭포는 학소대와 비하대 사이에 감춰져 있다. 높이 30m, 길이 4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가슴까지 시원해졌다.

◆토종 식물의 천국, 경상북도 수목원

보경사에서 청하환승센터로 돌아왔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경상북도 수목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경북도 수목원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 3회 운행한다. 다음 날 오전 7시 10분 청하환승센터에서 하옥행 버스에 올랐다. 경북도 수목원까지는 50분가량 걸린다. 해발 650m에 자리 잡은 경북도 수목원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수목원이다. 규모도 2천727㏊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굉음을 내며 산길을 오른 버스가 입구에서 멈춰 섰다. 입구로 들어서면 방문자 안내소를 거쳐 너른 조림지가 펼쳐진다. 경북도 수목원은 자연체험학습과 관람을 위해 조성된 관람분원과 향토 고유수종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한 보존구역이 공존하는 게 특징이다.

고지대인 탓인지 따가운 햇볕에 비해 바람은 선득했다. 평지에 비해 평균 기온이 3~4℃ 낮다는 게 이병우(67) 숲 해설가의 설명이다. 덕분에 경북도 수목원에서는 5월 말까지도 봄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봄꽃이 유독 일찍 졌다. 유독 변덕스러웠던 꽃샘추위 때문이다. 날씨 때문에 생육에 지장을 받으면서 개체 수도 예년에 비해 훨씬 줄었다.

전망대부터 올랐다. 임도를 따라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옆으로는 신갈나무가 빼곡이 자라고 있었다. 수목원 산림의 90% 이상이 신갈나무다. 가만히 보면 신갈나무들의 밑둥 중 한 개는 잘려 있다. 과거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었던 흔적이다. "여기서 나무를 몰래 잘라서 옮긴 것 같아요. 잘린 밑둥에서 새로운 가지가 자라 주기둥이 된 거죠. 자라면서 약간 휘어서 올라온 점도 특징이고요." 가쁜 숨을 쉬며 전망대에 오르니 사방을 둘러싼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뒤편에 높게 솟은 봉우리가 삿갓봉(716m)이다. 내연산 향로봉(930m)도 가까이 보였다. 시야가 선명할 때는 멀리 동해 쪽으로 월포해수욕장과 포스코 기둥까지 보인다는데 이날은 날씨에 비해 시야가 흐렸다. 1년에 10일 정도는 해안선을 따라 영일만 일부까지 보인다는데 그런 행운은 없었다.

경북도 수목원에는 목본 796종과 초본 1천93종이 식재돼 있다. 사실 수목원은 토종 자생식물을 수집하고 보존, 증식하는 게 본래 목적이다. 이곳은 규모가 넓은데다 고산지대여서 고산식물들을 연구하기에 적합하다. 오염이 되지 않은 점도 장점이다. 섬잣나무와 너도밤나무, 솔송나무 등 울릉도 자생 식물을 살펴볼 수 있는 울릉도식물원도 있다. 이 해설가는 국내 자생식물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구상나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에서만 자라는 자생식물이죠. 그런데 구상나무와 관련된 각종 재산권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갖고 있어요. 1910년대에 프랑스 선교사가 반출하면서 미국에 기준 표본을 기증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토종 식물의 호적등본을 빨리 만들어야 해요."

◆죽도시장에서 북부해수욕장까지

오후 1시 30분 수목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청하환승센터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500번으로 갈아타고 포항 죽도시장에 도착했다. 동해안 최대 시장인 죽도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물량이 많은 것은 문어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문어 중의 60%는 죽도시장에서 판매되고, 나머지는 구미나 경주, 김천 등지로 팔려나간다. 흥정하는 손님 앞에 상인이 문어를 턱 내려놓는다. 꿈틀거리는 문어가 어린아이만 하다. 80㎝는 족히 돼 보이는 방어가 1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렸다. 사실 여름 방어는 싸다. 겨울에 비해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로 산적이나 제수용으로 쓰인다. 방어와 비슷하게 생긴 히라스는 반대로 여름이 제철이다. 활어시장으로는 부산 자갈치시장이 가장 유명하지만 죽도시장은 어패류뿐만 아니라 건어물과 의류 등 온갖 물건을 판매하는 종합시장인 점이 강점이다. 시장 안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30년 된 돼지국밥 집과 수제비 골목에서 허기를 채울 수도 있다. 죽도시장에서 파는 특별한 음식으로 '아메리칸 똥 튀김'도 있다. 이름처럼 혐오스러운 음식은 아니고 어묵을 감자와 야채를 섞은 밀가루에 반죽해 튀긴 음식이다. 한 상인은 "미국사람 '변'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했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 튀김은 특이하게도 양념 초장에 찍어 먹는다.

죽도시장에서 북부해수욕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배들이 빼곡이 정박한 포항 옛 항을 따라 나무 데크로 보행로가 잘 조성돼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들도 적지 않다. 동빈큰다리를 건너면 천안함과 같은 급의 함선으로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포항함도 구경할 수 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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