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물수제비-박현수(1966~)

말없음표처럼

이 세상

건너다 점점이 사라지는

말일지라도

침묵 속에 가라앉을 꿈일지라도

자신을 삼켜버릴

푸르고 깊은 수심을 딛고

떠오를 수밖에 없다

떠올라

저 끝을 가늠해볼 수밖에 없다

수면과 간신히 맞닿으며

한 뼘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수평선을 닮아야 한다, 귀는

-시집 『위험한 독서』(천년의 시작, 2006)

옛날이 남아 있는 마을에 가보면 살림집과 무덤이 이웃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는 자리나 죽는 자리나 거기서 거기다. 자연의 숨결을 따라 살았던 조상들의 세계관이다. 무덤은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이터요, 청춘남녀들에겐 오붓한 연애 장소요, 후손들에겐 신성한 제의의 공간이기도 하다. 분별하지 않은 삶의 원형이다. 그곳은 하늘이 우리를 이 세상, 이 땅에 '물수제비' 뜨고, 우리는 "자신을 삼켜버릴" 이 땅에서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다가 제각각 힘이 다하는 어디쯤서 "침묵 속에 가라 앉"는 땅 밑, 말하자면 물수제비의 물밑과도 같은 처소다. 이렇게 비춰보면 이 시는 물수제비 하나로 삶과 죽음을 두루 짚어내는 데 아무런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한편 '물수제비'는 강을 건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물을 차고 날아오르는, 나아가는 데 제 뜻이 있다는 말이다. 수평과 속도의 균형으로 지속 가능한 인생의 완곡한 표현이다. 인생의 궤적은 끝내 침묵으로 용해되고야 말, 자취는 말없음표로 남아 점점이 사라지고야 말, 야멸차게도 정연한 수순으로 허무하다? 아니다. 난데없이 "수평선을 닮아야 한다, 귀는"이라는 덜컥수의 저항이 순간 초월의 포물선을 그린다. 수평을 남기고 잘려나간 귀는 파문을 닮았다. 시인의 자화상이 완성되는 순간… 침묵으로 웅숭깊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