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야 시루 안에 누워 크는 콩나물도 간혹 있지만 바닷가에 누워 있는 와상(臥狀) 주상절리는 흔하지 않아 신기하기만 하다. 현장으로 다가가 육각 또는 오각 상태로 굳어져 있는 주상절리를 보는 순간 이 돌덩이들은 '몹시 게으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냐면 마지막에 한쪽 다리에 힘을 주고 '어라 차차' 하며 일어섰으면 됐을 텐데 그대로 주저앉았으니 말이다.
부채꼴 주상절리가 다소 피곤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읍천 앞바다는 다른 바다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지형으로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우선 바닷속에 널려 있는 검은 암초 덩이들은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물보라를 하늘로 밀어올린다. 장관이다. 이런 풍경은 여느 바다에도 없는 독특한 것으로 사나운 야성미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거친 바다의 이미지는 근육질 사나이와 사뭇 닮아 있다. 녹초가 되도록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파도의 힘은 뾰족 돌을 몽돌로 만들지만 지치지 않는 사내의 힘은 이 세상을 자손들로 번성케 한다.
주상절리가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플레어스커트를 뒤집어쓴 듯한 부채꼴 한복판의 물웅덩이를 향해 거센 파도가 마치 겁탈이라도 하려는 듯 달려들고 있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다. 풍랑의 구애작전이 때론 행티로 바뀔 때도 있지만 주름치마를 덮어쓴 '절리 아가씨'는 가야금의 명주실 한 파람을 튕겨 물안개 속에서 소리 한 가락을 얻어낼 뿐 절대로 마음을 주는 법이 없다.
이곳 부채꼴 앞바다는 오랜 세월 동안 출입통제지역으로 묶여 있었다. 군인들이 초소를 짓고 철조망에 빈 깡통을 매달아 행여 간첩들이 기어들어 올까 봐 칠흑 밤을 하얗게 밝힌 곳이다. 이제 국회 안에까지 종북 세력들이 진을 치고 간첩들이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는 판국이니 바닷가 철조망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연전에 군인 초소와 철조망이 철거되면서 경주시는 이곳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1.7㎞를 '파도소리길'이란 명품 트레킹 코스로 만들었다. 요즘은 주말과 공휴일엔 좁은 송림 사이의 통로를 줄을 서서 내왕해야 할 형편이며 파도소리길 구간을 왕복하는 사람들로 바닷가까지 북적이고 있다.
또 읍천항 주변의 빈 벽들은 온갖 바다 풍경이 벽화로 그려져 있고 어시장과 횟집, 그리고 가게와 식당들도 만선이 들어온 듯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부채꼴 주상절리 하나가 통제지역에서 풀리면서 읍천항 전체가 활기를 얻었으니 한 발 더 나아가 스토리텔링이란 멋진 옷 한 벌을 입힌다면 그야말로 달리는 말에 채찍이 될 것 같다.
엄청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세계적인 명소인 독일 라인 강변의 '로렐라이 언덕'이나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도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니다. 읍천 앞바다에 누워 있는 부채꼴 주상절리에 비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로렐라이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는 노래 한마디로, 인어공주 동상은 안데르센의 동화 속 인어이야기를 그럴싸하게 치장한 것이 관광 수입을 끌어들이는 도깨비 방망이로 둔갑한 것이다.
읍천항 주상절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부채꼴 절리에 멋진 스토리텔링이란 이야기 옷을 입혀 주파수 낮은 방송으로 입에서 입으로 입소문을 내는 것이다. 가령 '신부가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이곳에서 해돋이를 보면 떡두꺼비 같은 아기를 낳는다'든가 '주름치마를 입고 온 미혼 여성이 연인과 함께 자물쇠를 채우는 사랑의 맹세를 하면 결혼으로 골인하게 된다'든가 솔깃한 이야기를 지어내 퍼트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 부처에게 빌면 '한 가지 소원은 이뤄준다'는 것이나 영천의 돌 할매에게 소원을 빌 때 '돌이 무거워지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도 모두 입소문 덕분이다.
나는 참 싱거운 사람이다. 남의 동네에 가서 괜히 돈벌이 방안을 골몰하다 자칫 점심을 굶을 뻔했다. 읍천항 주차장 옆 칼국숫집에 들러 요기를 하고 돌아서니 황혼녘의 해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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