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대구 도동서원

싱그런 보리밭 마음도 쾌청…선비정신도 느껴

보리 핀 들녘을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보리 냄새가 그리워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대구 달성 도동서원.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자연의 섭리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이다. 낙동강변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강변 들녘에는 보리밭이 많았다. 싱그런 보리밭을 보자 가곡 '보리밭'이 생각났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에…'.

몇 번이고 부르고 또 불렀다. 보리밭만큼이나 마음도 푸르게 변해갔다. 잊힌 향수가 되살아나면서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삭이 노랗게 익을 무렵이면 더 멋있을 것 같았다. 그때 다시 올 수 있으려나.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도동서원은 조선 오현 중 하나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원으로 사적 제488호로 지정돼 있다.

보리밭을 지나 한참을 달렸다. 지겨워질 때였다. 그런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향긋한 아까시 꽃향기였다. 취할 정도로 향기가 강했다. 힘든 여정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가니 정자가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다람재'라는 돌비석이 있었다. 이곳 느티골과 정수골을 사이한 능선 모양이 다람쥐를 닮아 예부터 다람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 정상에서 내려다본 낙동강과 도동서원의 전경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시원한 바람에 더위도 싹 가시었다.

드디어 도동서원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높이 25m의 400년 된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선비정신을 이어받은 것처럼 멋진 나무였다.

도동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중 한 곳이다.

서원의 담장은 담장 최초로 보물 제350호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서원은 더 아름다웠다. 엄숙한 서원인데도 왠지 편안함을 주는 것이 아마도 담장 때문인 것 같았다. 도동서원의 정문격인 수월루(水月樓)에 올라서니 낙동강과 건너편 고령 개진면 일대의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이 좋다.

그곳을 지나니 '중정당'이라고 적힌 큰마루가 보였다. 그 자태가 의미있게 다가왔다. 수백 년 전 선비들이 마루에 앉아서 책 읽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선비들이 학문하는 참뜻이 느껴졌다. 계단 부근에는 다람쥐가 큰 꽃송이와 함께 조각된 돌에 박혀 있다.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학문의 꽃을 피워 뜻을 이루기를 소망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문화재 해설사가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마루에 앉아 있으니 왠지 모르게 앉는 자세마저 조심스러워졌다. 선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해설사가 커피를 줬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도동서원도 곧 유네스코에 등재될 것이라고 했다. 자부심이 상당한 분이셨다. 가는 길에 마시라며 시원한 생수도 가득 채워 주었다. 고마웠다.

대구에 살면서도 가까운 곳에 이렇게 훌륭한 서원이 있었다니. 문화재를 잊고 산 것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여행도 좋지만 이런 옛 조상들의 정신이 배어 있는 곳을 자주 찾으리라 다짐했다. 서원을 청소하는 아저씨께 인사하고 서원을 떠났다.

가을에 은행잎이 물들 때 꼭 다시 오리라 다짐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선비들이 자신을 낮추고 학문에 정진하는 마음가짐을 배우고 가는 것만 같아 뿌듯했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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