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은 내년 초부터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지방대 출신을 일정 비율 이상 반드시 선발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하였다. 의대, 치대 등의 입시에서도 지방 출신 우대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지방 출신 인재 등용 방안이 조선시대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경국대전'에도 규정되어 있는 것이 주목된다.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은 크게 소과와 대과(문과)로 나누어졌다. 소과는 생원시와 진사시로 나누어졌는데, 생원시와 진사시 모두 1차 시험에 해당하는 초시(初試)와 2차 시험에 해당하는 복시(覆試)가 있었다. 소과에 합격하면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받았고, 대과 역시 1차 시험과 2차 시험이 있었다. 대과 합격자는 관직에 진출하였다.
'경국대전'에는 소과와 대과의 각 초시 합격자의 경우 인구비례로 지역별 합격자 수를 규정하였다. 조선시대의 헌법에 지역별 쿼터제를 도입한 것은 지역 차별 문제가 정치적, 시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오늘날 음미할 만한 부분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생원과와 진사과 초시의 경우 합격자 700명에 대해 도별 안배를 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총 700명 중 한성부 200명, 경기도 60명, 충청도 90명, 전라도 90명, 경상도 100명, 강원도 45명, 평안도 45명, 황해도 35명, 함경도 35명으로 인구수에 의해 지역별로 합격자를 할당하였다. 문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인구수에 의한 지역별 쿼터제를 정하였다. 소과와 대과 2차 시험 합격자는 성적이 기준이 되었는데, 생원과와 진사과의 최종 합격자 각 100명과, 문과의 최종 합격자 33명은 시험 성적순으로 뽑았다. 1차 시험에는 지역별 할당제를 적용하고, 2차 시험에는 능력별로 합격자를 뽑은 것은 지방 인재 등용을 위한 각종 제도의 수립에 고심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적용할 부분이 많다. 특히 지역별 인재 등용의 정수를 헌법인 '경국대전'에 명문화시킨 것에서 전국의 인재를 고루 선발하려는 조선 정부의 강한 의지를 읽어 볼 수가 있다.
정조 역시 지방의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여 사회통합을 이루려 했다. 정조가 각 지역의 인재를 두루 선발했던 모습은 '빈흥록'(賓興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빈흥록'은 정조 때 지역별 과거와 그 시행 경위, 급제자들의 시문 등을 수록한 책이다. '교남빈흥록'은 경상도 관찰사 이만수로 하여금 이언적을 배향한 옥산서원과 이황을 배향한 도산서원에 제향하게 한 뒤, 그곳에 참석한 유생들을 모아 응제(應製)하게 한 뒤 합격자를 시상한 기록이다. 옥산서원과 도산서원은 재야 세력의 거점인 영남 남인의 중심지였지만 정조는 특별 시험을 통해 이들 지역의 인재를 등용하였다.
'관동빈흥록'은 관동 지방의 유생들을 대상으로 별시를 실시한 내용을, '탐라빈흥록'은 제주지역 유생들을 시험으로 뽑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강원도, 제주도 지역 유생들까지 등용하려 한 정조의 사회 통합 의지가 나타나 있다. 제주도 출신의 거상(巨商)으로 특별 기부금을 낸 김만덕을 특별히 서울에 불러 왕을 만나게 하고, 금강산 유람까지 시켜주도록 한 것 역시 제주도 지역, 나아가 여성들까지 인재를 포용한 조처였다. 만덕이 조선 후기 최고의 여성으로 알려진 배경에는 지역과 신분의 차별을 넘은 정조의 통합사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조는 호남까지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는데, 호남 끌어안기의 상징은 김인후였다. 김인후는 16세기 취약한 호남지역에서 하서학파를 형성할 만큼 명망이 있는 학자였는데, 정조는 김인후를 성균관 문묘에 배향하는 조처를 단행함으로써 호남 선비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었다. 정조가 호남을 배려한 또 다른 사례는 호남의 대표 사찰 해남의 대흥사 경역 내에 표충사를 건립한 것이었다. 표충사는 절에서 흔치 않은 유교 형식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승병장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대사 유정의 화상을 봉안한 곳이다. 정조는 1789년 표충사를 건립하면서, 금물로 쓴 편액을 직접 써서 하사하였다. 호남의 상징 인물과 상징 공간에 왕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지역의 민심 통합에 나선 것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지역별 할당제를 적용하여 인재의 고른 선발을 꾀한 것이나 정조가 지역 안배에 세심한 배려를 한 점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병주/건국대 교수·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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