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A(22) 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버린 피의자가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나 경찰에 붙잡히면서 경찰의 초동 수사가 허술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구 중부경찰서는 지난달 31일 오후 8시 30분쯤 당초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던 택시기사를 긴급체포했다. 일주일 내내 경찰이 모든 수사력을 동원해 얻은 결과였다. 이후 어쩐 일인지 이 씨는 다음날 오전 1시 50분쯤 풀려났다. 긴급체포 5시간 만이었다. 경찰은 한 시간쯤 지난 오전 2시 40분쯤 새로운 용의자 조명훈(24) 씨를 강간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하룻밤 사이 용의자가 뒤바뀐 것. 살해 피의자 조 씨는 A씨가 실종됐던 날 중구 삼덕동 술집에서 함께 어울렸던 남성이었다. 경찰이 눈앞의 범인을 놓고 일주일 내내 A씨를 태운 택시기사를 쫓는 데만 시간과 경찰력을 낭비한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경찰
조 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될 만한 증거는 도처에 깔려 있었다. 경찰은 지난달 26일 경주에서 A씨의 시신이 발견된 뒤 A씨가 전날 술을 마셨던 곳 등 동성로 일대 CC(폐쇄회로)TV를 모두 확보, 수사에 들어갔다. 이때 경찰이 확보한 CCTV에는 A씨 일행과 조 씨가 술집에서 어울리다 다투는 장면, 술집에서 나온 A씨를 조 씨가 뒤따라가는 장면 등 조 씨의 얼굴이 버젓이 찍힌 장면이 모두 포착됐다.
A씨의 시신이 발견된 후 A씨의 휴대전화가 대구 북구 산격동에서 잠시 켜졌다는 점도 조 씨가 유력한 용의자라는 단서가 될 수 있었다. 북구 산격동은 조 씨가 거주하는 곳으로 조 씨는 25일 새벽 자신의 집에서 A씨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했다. 더구나 조 씨는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성범죄 전과자로 신상정보공개 및 고지 대상이었다. 경찰은 당초 A씨의 시신 발견 당시 옷차림과 몸에 난 찰과상을 바탕으로 A씨가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추정했었다. 경찰이 휴대전화 최종 위치가 확인된 북구를 대상으로 성범죄 전과자만 조사했다면 쉽게 살해 용의자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살해 피의자는 범행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경찰이 1일 새벽 조 씨를 붙잡은 곳은 A씨와 함께 어울렸던 중구 삼덕동 술집. 경찰에 따르면 조 씨는 평소에도 이곳에서 유흥을 즐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조 씨의 행적을 파악해 조 씨를 뒤쫓았다면 사건은 쉽게 해결될 수도 있었다. 범행이 일어난 조 씨의 집에는 A씨의 혈흔이 군데군데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경찰력 낭비 논란
모든 단서들을 제쳐놓고 경찰이 집중했던 수사는 실종 당일 중구 삼덕동 삼덕소방서 인근에서 A씨를 태운 택시기사를 찾는 일이었다. 경찰은 택시기사가 A씨와 마지막으로 접촉한 목격자인 만큼 택시기사를 유력한 용의자로 꼽았다. 범인이 아니더라도 사건의 단서는 택시기사가 쥐고 있다고 판단해 중부경찰서 4개팀과 대구경찰청 광역수사대 4개팀 등 총 76명을 동원한 수사본부를 꾸려 택시 찾기에 나섰다. 실제 택시기사의 진술은 조 씨를 잡는 강력한 단서가 됐다. 택시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A씨를 태우고 가던 중 한 남성이 차를 세우고 남자친구라며 북구 산격동으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를 찾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경찰은 A씨가 택시를 탄 중구 삼덕동 일대와 대구~경주를 오가는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에 설치된 CCTV를 확보, 밤샘 작업을 벌여가며 대구 번호판을 단 택시 70여 대를 포함한 일반 차량 6천여 대를 분석했다. 차량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정리 작업이 끝난 것은 살해 용의자가 잡히기 전날로 총 6일이 소요됐다.
또 A씨를 태운 택시는 경찰의 우선 용의선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차량이었다. 실종 당일 A씨와 함께했던 지인들을 최면 수사해 얻은 진술 조사 결과와 당시 상황이 일부 일치하지 않았던 것. A씨의 지인들은 경찰 조사에서 "택시 문에 부착된 광고판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실종 당일 삼덕소방서 부근 CCTV에 포착된 8대의 택시 중 광고판이 부착됐던 택시기사 차량을 용의선상에서 배제했다. 택시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합승한 사람이 A씨의 남자친구라고 말해 택시에 탄 여대생이 뉴스에 나오는 A씨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제보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 수사가 헤매는 사이 조 씨는 A씨와 함께했던 술집에서 버젓이 유흥을 즐겨왔다. 우여곡절 끝에 경찰은 사건 발생 6일이 지나 택시기사 진술을 바탕으로 용의자를 특정, 살해 피의자 검거에 성공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택시기사가 살해 용의자를 잡을 수 있는 중요 실마리를 쥐고 있어 집중적으로 추적했다"며 "조 씨도 주요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일주일 동안 경찰 2개팀을 동원해 동성로 일대를 돌며 조 씨의 행적을 쫓는 등 수사를 하고 있었으며 택시기사의 진술과 수사내용을 바탕으로 조 씨를 살해 용의자로 특정해 이른 시가 안에 붙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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