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행정의 '갈등 관리 능력' 부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봉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 건너 불구경하거나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의 이해 당사자들은 "대구시가 미리미리 성의를 갖고 대화를 나누고 신경을 썼더라면 이렇게까지 갈등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해 당사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신뢰를 쌓는 '갈등 조정 행정'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재단 조례개정 논란…대표 석 달째 공석, 이사 등 10 명 사퇴
대구문화재단은 3월 20일 이후 3개월 가까이 대표이사 자리가 공석이고, 재단 이사 및 감사 10명은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이사회의 마비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속수무책이다.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은 물론 대안 제시까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대구시의회 이재화 문화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이 4월 16일 대구문화재단 조례일부개정 조례안을 발의했고, 4월 26일 대구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시작됐다. 이 조례개정안은 대구문화재단 대표 이사의 지위와 권한을 축소하고 재단 정관 개정 시 시의회 해당 상임위에 내용을 사전 제출하는 것이 골자다. 이 과정에서 대구문화재단 이사 및 감사는 세 차례 긴급 모임을 하고 '조례개정 반대 성명서'까지 발표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대구시의회 이재녕 문복위 위원장과 대구문화재단 이사들은 성명서 및 입장을 잇달아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공방을 거듭하는 등 문화계의 갈등이 극에 달했지만, 대구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후 재단 조례개정안을 둘러싼 파행은 계속되고 있다. 대구시의회의 조례개정안 통과에 반발해 재단 이사 및 감사가 집단 사표를 제출했지만, 대구시는 이를 수리하지도, 반려하지도 않고 있다. 대구시 부시장이 이사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도 '사표를 반려해달라'는 말 외에는 어떤 카드도 내놓지 못했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시의회에서 조례 개정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때 시의회를 상대로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벌이든가, 문화재단 이사들의 의견을 물어 수렴과정을 거쳤다면 이런 극한 갈등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재단 이사진 공백 상황이 계속되면서 재단 정상화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단 정관에는 선임직 임원 중에서 결원이 생기는 경우 '그 후임자를 2개월 이내에 선임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대표이사는 여전히 공석이다. 정관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구문화재단 이사장인 대구시장은 침묵하고 있다.
대구시는 문화재단 사태의 해결 방향을 '토론회'를 거쳐 정한다는 방침이다. 아무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가 사안이 심각해지자 자신의 역할을 토론회에 떠맡기는 분위기다. 시민 대표, 문화계 대표 등에게 토론회를 맡긴다는 방안이지만 얼마나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의문이다. 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대구시가 문제 해결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팔공산 국립공원 추진…반대 여론 거세지자 양쪽 눈치만 살펴
지난해 광주 무등산이 국립공원 승격이 유력해지면서 지역의 일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학계도 팔공산의 규모와 가치에 주목하면서 국립공원 승격에 힘을 보탰다. 이처럼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요구하는 여론이 폭넓게 조성되는 듯하자 대구시는 올 1월 팔공산 동화집단시설지구 내 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추진을 위한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치밀한 준비 없이 추진한 주민설명회는 그때까지 잠자던 승격 반대 여론이 터져 나오는 빌미만 제공했다. 이후 팔공산 국립공원을 찬성하는 시민사회단체가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범시도민 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 인근 주민들은 '팔공산 국립공원 반대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최근 세 과시까지 했다.
이처럼 찬반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대구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는 국립공원 승격에 찬성하지만 내놓고 입장을 밝히지도 않은 채 양측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 경북도와의 협의도 진척이 없다. 대구시는 경북도와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위한 실무협의회까지 구성했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구시의 어설픈 행정력이 오히려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추진에 발목을 잡을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국립공원 승격 찬성론자는 "무등산은 광주시가 중심이 되고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주면서 일이 비교적 쉽게 추진됐지만 팔공산은 대구시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표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걱정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MOU체결 사실 숨겨 두 지역 유치 격화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을 둘러싼 수성구와 달성군의 지역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수성구의회 동물원 이전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주민 1만7천346명이 참여한 서명서를 대구시와 대구시의회에 제출했다. 위원회 측은 "대구시가 1993년 동물원을 이전하기 위해 삼덕동 일원을 공원으로 이미 지정했다"며 "도시관리계획은 도시의 근간으로 한 번 결정하면 신뢰성의 기반 아래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달성군은 지난해 8월부터 하빈면 대평리 등 5곳을 동물원 이전 후보지로 내세우며 유치 운동을 펴고 있다. 지난 3월 먼저 서명운동을 벌여 동물원 유치에 불을 지폈고, 동네 곳곳에 유치 기원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달성군 유치추진위원회 측은 "주민들이 혐오시설인 대구교도소의 이전을 승낙한 만큼 동물원은 반드시 하빈면으로 옮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숨기기에만 급급한 대구시 탁상 행정은 양 지역 갈등을 더욱 증폭시킨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구시가 2012년 11월 민간사업자들과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사업과 관련한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고도 지난 4월 대구시의회가 이를 폭로하기까지 숨겨온 사실이 드러난 것. '대구시가 이미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커지면서 양 지역 유치 운동이 더욱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경북연구원에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 입지 선정 및 타당성 연구용역 조사를 의뢰해 오는 9월쯤 입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투자양해각서 체결은 주민 갈등 문제 등을 고려해 밝히지 않았던 것뿐, 다른 의도로 숨긴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낙동강 취수원 장기 표류…구미와 충분한 조율없이 추진 반발 자초
대구의 대표적 지역 현안으로 꼽히는 '낙동강 취수원 이전 사업' 또한 갈등 조정 실패로 장기 표류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2009년 1월 1.4-다이옥산 낙동강 검출 이후 '깨끗한 수돗물 공급'을 위해 구미 취수원 이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취수원 정책은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취수원 이전 정책 실패의 결정적 원인은 구미시와의 갈등 조정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데 있다. 구미 지역 주민들은 지난 2010년 이후 "대구시가 깨끗한 물을 먹겠다는 논리만 내세운 채 일방적으로 취수원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2010년 11월 경상북도의회는 '대구 취수원 구미 이전 반대에 관한 결의문'을 전원 찬성으로 채택하기까지 했다.
취수원 이전 정책 결정 당시 대구시는 구미시와의 사전 협의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구미시가 2009년 11월 국토해양부에 '반대 입장'을 밝힌 사전 의견 검토서를 제출했지만 '갈등 조정 작업'에 나서지 않았던 것. 오히려 대구시는 "취수원이 이전하면 기존에 구미지역에 산재했던 취수원이 통합돼 구미 전체로 보면 상수도 보호지역이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취수원 이전 반대는 합리성이 없는 소수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구미시의 강력한 반발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도리어 폄하해 일을 망친 것이다.
이후 사업 주체인 국토해양부까지 해당 지자체(구미)와의 갈등이 있으면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구미시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앞으로도 취수원 이전은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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