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를 두고 마주한 이웃 국가 미국과 쿠바가 적대 관계로 돌아선 것은 카스트로 정권 출범 이후였다. 1959년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던 바티스타 정권이 무너지고 카스트로가 등장했을 때 쿠바인들은 환영했지만 미국은 반기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미국을 버리고 소련에 기댔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쿠바를 핵무장해 미국의 심장부를 겨누기로 했다.
1962년 10월 소련의 핵무기와 미사일 기지 건설 자재를 실은 선박이 쿠바로 향했다. 때맞춰 쿠바에 미사일 기지가 들어서고 있는 사실이 항공 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10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대국민 방송을 통해 소련에 경고한다. "미국은 쿠바에서 핵미사일이 발사되어 서반구가 공격당할 때는 그것을 소련의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며 미국은 소련에 대한 최대의 보복 공격을 가할 것이다."
케네디는 소련에 14일 이내로 쿠바 미사일을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쿠바 해역에 대한 해상 봉쇄 조치에 들어갔다. 그 후 1주일, 미군은 실제 상황의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 세계는 일촉즉발의 핵전쟁 공포에 숨을 죽였다.
핵전쟁의 공포가 극에 달했던 26일 흐루시초프는 미국에 전문을 보냈다.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소련으로부터 3천 단어짜리 이 전문을 받아 해독하는 데는 꼬박 12시간이나 걸렸다.
전 세계가 핵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던 12시간은 너무 길었다. 미국과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 후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이 절실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듬해 6월 미국과 소련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백악관과 크렘린을 연결하는 직통 전신 기기 개설에 합의했다. 세계 두 초강대국 간 첫 핫라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핫라인은 주요국을 거미줄처럼 잇고 있다. 앙숙인 인도-파키스탄도 2004년 핫라인을 개설했다. 오해로 인한 전쟁 등 비상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한국과 중국 군 수뇌부가 이번 주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고 양국 간 핫라인 체제를 본격 가동하기로 뜻을 모았다. 기존의 해군 전화회선을 이용할지 별도의 핫라인을 개설할지는 추후 논의한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한'중 간 핫라인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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