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남의 미디어아트 작품 세계는 오묘하고도 아름답다. '겸재정선 고흐를 만나다' 작품 앞에 서면, 세 개의 스크린이 놓여 있다. 첫 번째 스크린인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서 나귀를 탄 사람이 터벅터벅 고흐가 그려놓은 들길인 두 번째 스크린으로 건너가 세 번째 스크린인 고흐의 방으로 찾아간다. 그림 속 고흐와 겸재 정선은 한참을 이야기 나눈다. 다시 동양화로 돌아오는 겸재 정선의 손에는 고흐의 자화상이 들려 있다.
이처럼 이이남은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 차용과 복제, 회화와 영상애니메이션 등이 교차하는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고흐, 클림트, 쇠라 등 서양의 명화와 중국의 명청회화, 단원 김홍도, 신사임당 등 동양의 고전 이미지를 차용한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풍경 속에는 이야기가 흐른다. 우리 눈에 익숙한 명화의 이미지는 디지털이란 방식으로 최신 기법을 입고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시창의 산수도'는 폭포가 쏟아지고, 물이 흐르는 가운데 펼쳐지는 풍경을 담고 있다. 작품 곳곳에는 현대미술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폭포에서 물이 흐르고,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풍경이 변화하는 장면, 그리고 액자 속에서 사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은 서정적이면서도 재미있다.
'모나리자-폐허'도 흥미롭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 위로 폭격기가 떨어진다. 폭탄을 터트리고 비행기가 추락하는데, 이 폭격당한 곳에서는 '재'가 아니라 '꽃'이 피어난다. 전투가 격렬해질수록 화면 가득 화사한 꽃들로 채워진다. 이처럼 작가는 현대의 비틀린 폭력성을 평화와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대체하면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작가는 고전적인 이미지에서 발랄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을 던지고, 이것을 직접 실현해낸다. 미디어아트이지만 차갑지 않고, 이야기가 풍부하다. 텅 빈 '묵죽도'는 바람결에 흩날리고 눈이 내리는 대나무숲의 풍경을 펼쳐보인다.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고흐의 조각, 그리고 코뿔소가 서서 물이 흐려지는 조각품도 인상적이다.
리안갤러리에서 7월 6일까지 열리는 이이남의 전시는 작가가 대구에서 여는 첫 개인전으로, 신작을 대거 선보인다. 빈센트 반 고흐를 오마주한 디지털 오브제 신작과 자연을 소재로 한 수묵풍경화를 새롭게 변주한 신작 10여 점을 전시한다. 053)424-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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