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말이 원고지 위에 부딪치다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 없는 생명의 운명이 원고지 위에서 마주 부딪치고 있습니다. 말은 현실이 아니라는 절망의 힘으로 다시 그 절망과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 아마도 말의 운명이지요. 그래서 삶은, 말을 배반한 삶으로부터 가출하는 수많은 부랑아들을 길러내는 것인지요. (김훈의 '칼의 노래' 동인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다시 '칼의 노래'를 읽었다. 스물두 번째이다. 통제사가 23전 23승을 했으니 최소한 스물세 번은 읽을 참이다. 몇몇 문장들은 외울 정도이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내면의 의지가 흔들릴 때마다 '칼의 노래'를 읽는다.

통제사의 절망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는 삶의 풍경이 쓸쓸했다. 밖의 적보다도 안의 적에 의해 상처받는 우리네 삶의 풍경도 덩달아 쓸쓸했다. 그 쓸쓸함이 거대한 힘이 되어 가슴으로 달려왔다. 삶이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절망과 무의미한 삶에 정면으로 걸어갔던 통제사의 마음을 읽었다.

무엇인가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안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많다. 안 하는 것은 내 속의 내가 말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고, 못할 때는 내 밖의 내가 나를 가로막기 때문일 게다. 그것이 언제나 답답했다.

우연히 바라본 TV에 모 정치인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말이 들렸다. 우리 스스로가 정치의 주인공이라고. 이제는 수직적인 정치의 시대가 아니라 수평적인 정치의 시대라고. 그것이 21C 시대정신이라고 부르짖는다. 청중들이 환호를 하고 박수를 친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심지어 혼잣말조차도 원고지 위에 머물지 못하고 원고지와 부딪치면서 흔들린다. 문자가 되지 못한 말은 끝내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그것이 요즘 내가 살아가는 풍경이다.

가슴에 담긴 말들, 원고지에 옮겨지는 말들, 그리고 대중에게 보이는 말들. 말의 풍경들은 모두 다르다. 생각과 말이 달라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남들에게 보이는 내가 어긋날 때 당혹스럽다. 말을 사랑하고 그 말을 문자로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현상은 일상적이면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하고픈 말을 다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모두 말의 감옥에 감금하고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절망의 힘으로 절망과 싸워나가면서 그 마음을 '바람이 불었다. 적은 오지 않았다'라고 간결하게 글로 남긴 통제사가 부러웠다. 분명한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데 어느 누구도 그 분명한 것을 들으려고도, 말하려고도,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진실은 사라지고 욕망으로 점철된 헛된 말들만이 가득하다. 그것을 절망이라 부를 수 있다면 차라리 거기에서 다시 시작을 할 수 있을 텐데 아무도 절망을 입에 담지 않는다. 오히려 발설되는 언어에는 절망은 사라지고 희망만이 가득하다. 진실로 희망이라면 언어를 넘어 실천으로 드러나야 할 텐데 그런 풍경은 목도하기가 쉽지 않다.

살아보면 분명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잡고 싶어도 떠나는 사랑이나, 머물고 싶어도 흘러가는 시간이나, 아름다움을 계속 바라보고 싶음에도 떨어지는 꽃잎이나, 발을 적시고 싶은데도 밀려가는 밀물이나, 더 맞고 싶은데도 흩어지는 바람처럼. 이런 경우에는 정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의 일에 어쩔 수 없다는 표현이 너무나 아쉽다. 내 생각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소중함이 분명할 텐데 서로 다른 생각의 거리만큼이나 소통의 거리도 멀다. 내가 먼저 돌아서면, 내가 먼저 한 발짝만 내딛으면 생각이 만날 수 있을 텐데. 자기 생각에만 갇힌 사람들의 풍경은 그래서 언제나 쓸쓸하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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