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벌거숭이 임금님들의 세상

어릴 적 읽어본 동화가 생각나는 세상이네요. 왜 있잖아요. 최고의 실로 짰다는 최고의 옷을 입고 거리 행진을 하던 '벌거숭이 임금님'. 벗은 몸으로 거리를 행진하는 임금님을 향해 최고의 옷을 입은 멋진 임금님이라고 극찬하며 박수를 치던 사람들.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이라는 사기꾼들의 말에 속아서 임금도 신하도 백성들도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극찬하는 진풍경. 그때 한 꼬마가 그러죠 "임금님이 옷도 안 입고 다니네. 벌거숭이 임금님이다. 우헤헤헤."

동화를 읽으면서 그 어른들의 모습과 생각이 어찌나 바보스럽던지 "에이 그런 어른들이 어디 있어? 치"하고는 동화작가가 약간 모자라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커서야 안데르센이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 알게 됐지 뭐예요. 아주 짧은 동화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허영심과 가식, 위선은 물론 권력에 아부하는 인간의 심리까지 아주 예리하게 꿰뚫고 있으니까요. 그걸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기막히게 풀어갔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요즘 벌거숭이 임금님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권력이, 슬프게도 돈이잖아요. 그러니 이 시대에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임금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겠죠. 돈만 있으면 어디 가서든 임금님 같은 최고의 대우를 받으니 말이죠. 돈과 권력은 진실을 거짓으로 바꿔 놓기도 하고 거짓을 진실로 바꿔놓기도 하잖아요.

 

아, 여기에는 우화인 '양치기 소년'도 살짝 삽입해보면 참 재미있겠네요. 늑대가 왔다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양치기 소년. 우화에서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는 마을 사람들이 진짜 늑대가 왔을 때 달려오지 않았잖아요. 거짓말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는 우화인데요. 현대판 양치기 소년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지요. 벌거벗은 임금님의 사기꾼들이 쓴 수법을 차용하는 거지요. '늑대가 왔다고 소리 지르는데도 오지 않는 마을 사람은 사람의 탈을 쓴 늑대다'라고 말이죠.

"에이, 그렇기야 하겠어?" 하지만 세상은 그러고 있는 거 같아서요. 가장 꼭대기에는 뭔가 우리가 모르는 절대 권력이 존재하고 있겠죠. 그것이 결국 돈과 연관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요. 그리고 참 많은 벌거숭이 임금님들을 만들어내지요. 인간이 가진 허영심에 불을 지르고 갖가지 진귀한 것들을 눈앞에 펼쳐보여요.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존경을 받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임금이 아니다' 임금님들의 귀에는 환청이 들릴 정도겠죠. '난 풍족하니깐 그래서 난 최고니깐.' 요즘 유행하는 그야말로 '갑'인 거죠. '갑'으로서의 조건은 무조건 많이 남겨라, 최대한 착취하라, 말 그대로 '최소의 금액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려라'인데 그렇게 얻어진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누리죠.

 

아, 이야기가 좀 곁가지로 새어 나갔네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해야겠어요. 벌거숭이 임금님들이 숫자놀음에 점점 더 빠지고 있다는 거예요. 대학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취업률이 된 지 오래고, 모든 게 수학도 아닌 산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잖아요. 최고의 상아탑에서 인간의 문화와 역사, 예술과 철학을 공부한다는 자부심은 깡그리 무너지고 취업이 가장 잘되는 과가 최고의 학과로 인정받고 있잖아요. 그 정도까진 자본주의 사회니 참아줄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순수예술을 공부하는 학과는 취업률을 높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예 없애고 있거든요.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요. 우리나라의 문자를 배우는 국문학과도 위태롭다는 거예요. 벌써 한 대학이 학생 수가 줄어들고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쯤 되고 보니 참, 그 임금님들이 옷만 벗은 게 아니라 지켜야 할 정신까지 벗어버린 듯해요.

아,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참 여러 갈래로 말들이 튀네요. 마치 냄비에서 팝콘 터지듯 하네요.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타다닥 세상 밖으로 튀는 팝콘들. 벌거숭이 임금님들이 그렇다고요. 아니 사람들이 돈에 의해 권력에 의해 팝콘 같은 벌거숭이 임금님들이 사방에서 생겨 난다고요. 아,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하지요? 오늘은 좋은 생각이긴 한데 행복편지는 아닌 듯해요. 조금은 불편한 진실이 담겼으니 말이죠. 그런데 벌거숭이 임금님들에게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벌거벗었다'고 얘기해줄 해맑은 아이들은 어디 있는 거죠?

권미강/경북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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