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0 광장] 요즘 저승에는 손가락 지옥이 생겼을지도

홀로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평소에는 닭살이 돋아서 못하는,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는 말씀도 거듭 올렸다. 주호민 작가의 만화 '신과 함께: 저승 편'을 읽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이다. 만화에서처럼 불효한 죄로 한빙(寒氷)지옥에 갈까 겁이 나서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만화의 영향을 받은 행동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만화책을 슬그머니 고등학생 아이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너도 이 책을 읽고 나처럼 좋은 영향을 받아서 어미인 나한테 좀 더 잘하라'는 계산도 물론 담겼지만, 그보다는 아이 또래가 죄의식 없이 범하기 쉬운 말의 업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자는 의도가 컸다.

정말이지 요즘 아이들, 말이 너무 거칠다. 우리는 뭐 안 그랬나, 그맘때야 다 그렇지, 반박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어른들도) 입으로만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도 말을 하지 않는가. 손가락으로 입력한 말은, 입으로 한 말과 달리 눈에 보이는 기록으로 디지털 세계에 저장된다. 그 기록은 순식간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공유될 수 있다.

말의 칼에 찔리는 피해자 입장에서 보자면, 옛날에는 한 번 찔리고 말 일도 요즘에는 찔린 데를 또 찔리다 못해 영원히 찔리게 생긴 것이다.

세 치 혀를 조심하라. 한국 영화사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올드 보이'의 주제이다.

오누이의 근친상간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고등학생 오대수. 자기만의 비밀로 간직하지 못하고 친구들 앞에서 발설해 버린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소문의 파장으로 누이가 자살하자, 남동생은 필생의 복수를 준비하고 오대수는 결국 죗값으로 제 혀를 잘라 바친다.

고창영 시인의 '비밀'이란 시를 보면, 한국전쟁 때 군인들을 피해 마룻장 밑으로 몸을 피했던 열세 살의 소녀들은 뒷집 젊은 색시가 군인들에게 윤간을 당한 사실을 알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우리덜 가운데 누구도 그날 일을 지금껏 말하지" 않고 가슴에 묻었다. 신랑한테도 말 못하는 색시의 사정을 이심전심으로 역지사지한 덕분이다.

'올드 보이'의 오대수보다야 이 소녀들이 몇 배 윗길이다. 그러나 오대수처럼 무심코 뒷담화를 한 죄로 혀를 잘라야 한다면, 이 세상에 혀가 남아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신과 함께'에 그려진 발설(拔舌)지옥을 보며 괜스레 뒤가 켕기고 가슴이 뜨끔거리는 까닭이다.

발설지옥이란 이름 그대로 구업을 지은 중생의 혀를 몽둥이로 두드려 뽑은 뒤 판판히 넓혀 그 위에다 과일나무를 심고 밭을 가는 곳이다. 대관절 구업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무서운 형벌을 가할까? 불교에서는 구업을 몸과 마음의 업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중죄로 본다.

구업의 종류로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여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양설(兩舌), 공연히 남을 성내게 하는 악구(惡口), 남을 속이려는 의도로 하는 망어(妄語), 도리에 어긋나는 내용을 교묘하게 꾸며대는 기어(綺語), 네 가지를 꼽는다.

요즘 사람들이 혓바닥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짓는 구업을 보면, 본 것을 봤다고 말한 오대수의 뒷담화 정도는 외려 점잖다는 생각마저 든다. 멀쩡한 친구를 죽음으로 내모는 카톡 왕따, 한국 여성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사마다 도배를 해대는 악의와 증오의 댓글, 밑도 끝도 없는 음모론, 이른바 '홍어 택배' 운운하는 발언…. 본디 혓바닥보다 손가락이 더 개념 없고 무디고 사악한 언어의 업장을 짓는 도구인지?

'신과 함께'에서는 저승도 이승의 변화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현대화된다는데, 그렇다면 이제는 발설지옥 부속 시설로 손가락을 늘여 뽑아 아궁이 부지깽이로 쓰는 발지(拔指)지옥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박정애/강원대 교수·스토리텔링학과 pja832@naver.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