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국기 문란 범죄 불구속, 누가 받아들이겠나

검찰이 대선 여론 조작 및 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애초에 구속 방침을 결정했다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반대에 부딪혀 내린 결론으로 알려졌다. 선거법 위반죄 적용을 관철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법 논리가 정치 논리에 밀려 어정쩡하게 타협한 결과이다. 채동욱 총장 체제의 검찰이 '정치 검찰'의 멍에를 벗을 기회를 놓쳤다.

국정원의 수장이 직원들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하고 경찰 고위 간부가 수사 내용을 축소'조작하려 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제도를 뿌리째 뒤흔드는 범죄 행위이다. 국기를 문란케 한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구속 수사가 타당함에도 이를 포기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 수사팀이 의욕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채 총장이 이를 살리지 못해 검찰 독립성이 또다시 훼손되고 말았다.

황 장관은 이번 수사가 정권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해 선거법 적용에 반대하고 구속영장 청구도 막았다고 한다. 파장이 큰 수사 지휘권 발동을 피하고 검찰에 자기 의견을 강요함으로써 시간을 끌어 결과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 검찰 중립과 수사의 공정성을 지켜줘야 할 법무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의식한 과잉 충성으로 있을 수 없는 행태를 보여 검찰을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번 수사의 결론은 법치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게 됐다. 수사 과정에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이 사안에 대해 유독 말을 아끼는 박 대통령도 침묵으로만 일관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수사 결론이 도출된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잘못이 있는 사람은 처벌하는 데 결단을 내려야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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