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구를 방문한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대구의 물길과 하늘길을 열겠다고 공약했다. 하늘길은 우리가 염원하던 신공항이었다. 우리는 환호하며 전국 최고의 득표율로 화답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2011년 4월 1일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건설 불가를 발표했다.
분노가 들끓었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있었다. 여당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후보가 있었던 것. 한동안 침묵하던 그는 신공항이 필요하다며 대권을 잡으면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다.
새누리당 대선 주자가 된 그는 대구보다는 주로 부산에 가서 "신공항은 정치적 고려 없이 세계적인 전문가들에게 맡겨 입지 선정을 하겠다"며 공항 추진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부산은 "박근혜 후보가 가덕도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라며 반색했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이런 그를 비판하지 않았다. 부산의 심기를 건드려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누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묵시적 동의에서다.
그래서 부산과 달리 우리는 공항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부산의 언론들이 신공항을 갖고 야단법석을 떨어도 우리는 애써 초연하려 했다. 대구경북은 이명박 후보에 이어 다시 박근혜 후보를 전국 최고 득표율로 당선시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했고 대구시와 경북도는 신공항을 국정 과제에 채택해줄 것을 건의했다.
결과는 무산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가 발표한 140대 주요 국정 과제와 210개 이행 공약 계획에서 지방은 철저히 배제됐다. 부산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여론마저 심상찮게 돌아가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올해 신공항 수요 조사를 끝내고 내년에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확보된 예산이 남부권 신공항 수요 조사비 10억 원이다. 새 정부에서의 신공항 추진은 이렇게 해서 물꼬를 텄다.
하지만 정부의 신공항 의지는 여전히 의심받고 있다. 새로운 SOC 사업 전면 중단을 발표해 지방민들의 개발 욕구를 봉쇄하더니 신공항 건설도 수요 조사를 하되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5개 시도의 사전 합의를 요구했다. 대구를 찾은 국토교통부 신공항 담당 최고위 책임자는 기자와 만나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항 건설을 백지화시킨 정부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2년 만에 다시 공항을 건설하겠다고 할 수는 없다. 수요 조사를 해서 공항 개발 논리를 갖추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수요 조사는 분명히 공항 건설을 전제로 해야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이를 토대로 조건부 수용을 밝힌 것은 옳은 방향이다.
문제는 부산이다. 부산은 입지 타당성 조사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입장이다. 처음에는 가덕도만을 대상으로 하는 입지 타당성 조사를 주장하다가 현재는 밀양도 조사 대상지에 포함시키는 안을 제시했다. 대구경북 역시 밀양을 입지 타당성 조사에 포함시킨다면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정부가 이를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당장 추경에 확보한 예산 10억 원만으로는 입지 타당성 조사까지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이 점과 수요 조사를 해서 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개발해야 남부권 신공항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선 수요 조사 및 사전 합의, 후 입지 타당성 조사'를 내세우고 있다.
정부의 주장에도 타당한 면이 분명 있지만 우리는 정부가 신규 SOC 사업 전면 중단을 선언한 마당에 공항을 과연 하려 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부는 이를 불식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수요 조사와 입지 타당성 조사를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맞다. 수요 조사는 공항 건설을 전제로 하되 현재의 수요가 아닌 건설 이후의 잠재적 수요까지 감안해야 한다. 다음은 입지 타당성 조사에 따른 예산 문제가 남는다. 제2 관문 공항을 건설하려는 마당에 예산 몇십억 타령을 하는 정부를 보면 공항 건설 의지가 진정 있는지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돈 타령을 하면 5개 시도가 부담을 하자. 공항이 필요한 5개 시도가 예산을 마련하겠다는데 정부도 딴소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신공항을 건설하지 못하면 우리에겐 신공항이 영영 사라진다. 이명박 다음에 박근혜가 있었지만 그 뒤에는 아무도 없다는 점이 이를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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