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는 외벽 도색공사를 두고 아파트 입주자대표와 입주자대표회장, 관리사무소가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해 아파트 외벽 도색공사 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입주자대표 A씨가 "입찰 과정에 담합 의혹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A씨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관리사무소장에게 "맨 처음 7개 업체가 참가했다가 막판에 3개 업체를 추가했는데 이는 무슨 근거로 한 것이냐"며 "입찰 과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장은 "입찰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회의록에 서명까지 하지 않았느냐"며 "무슨 근거로 담합, 비리 등의 의혹을 제기하는지 모르겠다"고 맞섰다. 결국 A씨는 아파트단지에 아파트 도색공사 과정에 대한 문제점 등을 제기한 호소문을 붙였고, 이를 본 입주자대표회장은 A씨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죄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아파트 입주자대표와 관리사무소, 주민들이 아파트 관리를 둘러싸고 고소와 폭력사태를 벌이는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웃사촌' 옛말
아파트 관리를 둘러싼 주민들의 갈등은 각종 수선 공사 진행 때 가장 심하게 드러난다.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의 경우 전 입주자대표회장이 노후된 승강기를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200만원 이상 아파트 보수 공사의 경우 국토교통부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입찰공고를 하게 돼 있는데 왜 공고를 하지 않았느냐"며 문제를 제기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관리사무소 측은 "공개 입찰을 시스템에 올리는 것은 지난해 10월부터 하도록 돼 있는데 우리 아파트 승강기 교체 공사는 그 이전에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전 입주자대표회장은 "그렇다면 입찰 공고를 했다는 증거와 입찰 관련 자료들을 공개해라"고 요구했지만, 관리사무소 측은 "공개는 가능하지만 복사는 불가하다"고 말했다.
이에 전 입주자대표회장은 달서구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관리사무소 측은 이후 승강기 공사에 대해 특별감사를 받았다. 관리사무소 측은 "감사 때문에 직원 봉급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였다며 전 입주자대표회장을 경찰에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이처럼 아파트 관리 문제로 인해 입주자대표와 관리사무소, 주민 간 갈등이 경찰 고소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더 심한 경우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였던 B씨는 2011년 2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이 된 이후 소송에 휘말려 제대로 일해보지도 못하고 임기를 보냈다. 아파트 관리 대행업체와 일부 주민들이 B씨가 아파트 내 테니스동호회장을 맡고 있어 겸직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B씨의 당선무효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B씨는 아파트 관리 대행업체와 문제를 제기한 일부 주민들을 대상으로 직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이겼다. 하지만 이를 무효화하는 소송이 또 제기됐고 이 와중에 소집된 임시 입주자대표회의 때 B씨는 업체가 동원한 용역직원 10여 명에게 끌려나오며 전치 6주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
◆분쟁 증명할 방법 모호해
아파트 관리 문제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입주자대표와 관리사무소, 주민 간의 불신 때문이다. 아파트 내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입주자대표회가 사업 진행을 결정하면 집행과 관리는 관리사무소에서 하도록 돼 있다. 이때 입주자대표회는 업체 선정에서 계약 진행까지의 과정에 관여할 법적 근거가 없다. 비록 입주자대표회에서 감사를 파견하지만 전문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신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 대구지부 김원일 사무총장은 "사업 진행에 대한 결정을 입주자대표회가 하더라도 진행 과정에 대한 권한은 대부분 관리사무소장이 갖고 있다"며 "최근 주택법 시행령이 개정됐음에도 입주자대표회가 진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대구시회 박동우 사무국장은 "집행금액 단위가 대부분 억 단위로 흘러가다 보니 '일부라도 뒷돈을 받는 것 아니냐'는 근거 없는 의심을 받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건설 관련 비리를 아파트 보수 공사에도 대입해서 바라보면서 근거 없는 의심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런 아파트 관련 분쟁은 증명할 방법이 모호해 갈등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북구청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로 들어오는 민원이 만약 주택법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행정처분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민사 소송으로 가야 할 문제들이다"며 "민사는 '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현장 입증이 잘 안 되다 보니 사법적 판단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업 진행 투명하게 해야
깊어가는 아파트 관리에 따른 분쟁의 해결책 또한 입주자대표와 관리사무소의 입장이 다르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대구시회 박동우 사무국장은 "관리사무소 입장에서 공사를 진행할 때 입주자대표회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심 없이 아파트 관리에 대한 의결 및 감독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 진행을 투명하게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 대구지부 김원일 사무총장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는 주택 소유주 입장에서 아파트 관리에 대해 의견을 낼 권리가 있다"며 "사업 집행 과정에서도 입주자대표회의 권한을 더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총장은 "20만원 이상 공사에 대해 전자 입찰을 도입하거나, 공인회계사를 통한 아파트 예'결산 감사 등 최대한 투명한 관리비 집행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선진화운동본부 송주열 대표는 "아파트 관리 규약이나 사업 진행 시 관련 표현을 좀 더 명확하게 해 의심의 여지를 없애도록 입주자대표와 관리사무소 측에서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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