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자였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옥중에서 사망했다. 87세의 고령에 쇠약해진 육신은 죽고 나서야 감방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1976년 3월, 자신을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7년 9개월간 이어진 군사정권을 열었다. 5년간 재임한 그는 민정 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로베르토 비올라, 카를로스 알베르토 라코스테, 레오폴도 갈티에리, 알프레도 오스카르 생장, 레이날도 비그노네 등 동료 군인들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줬다. 비델라 이후 대부분이 짧게는 10일, 길게는 수개월 동안 권력의 달콤함을 누렸고 비그노네만이 1년 5개월간 재임했다.
비델라와 그 일당은 공포정치로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했고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악행을 저질렀다. 좌익 소탕의 명분을 내세워 인명 살상과 탄압 등 국가에 의한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했으며 조직적인 고문과 정보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페론을 추종하는 약 1만 명의 게릴라가 실종됐고 학생, 기자 등 최소 9천 명에서 최대 3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델라는 낮은 지지율을 회복하려고 1978년 월드컵을 개최했고 비그노네는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고 1982년에 포클랜드전쟁을 일으켰다. 월드컵 개최와 포클랜드전쟁은 지지율을 일시적으로 회복시키고 아르헨티나 국민을 단합시키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포클랜드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하면서 잔악한 군정은 종말을 맞았다.
아르헨티나의 암흑기는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 놀랍도록 비슷하게 재현됐다. 비델라보다 여섯 살 적은 전두환은 1979년에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국을 장악한 후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을 거쳐 다음해에 대통령이 됐다. 비델라보다 한 살 적은 50세의 나이에 권력을 쥔 그가 월드컵을 능가하는 올림픽을 유치해 지지를 얻으려 한 것도 비델라와 닮은꼴이었다. 비델라와 전두환은 퇴임 후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수감됐다가 사면받음으로써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비델라는 죄악상에 비춰 국민 화합을 위한 사면은 온당치 않다며 거세게 반발하는 여론에 부딪혀 재수감됐던 반면 전두환은 그렇지 않아 다른 행로를 걷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오히려 편안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정신적으로는 불편할지 모르나 물질적으로는 전혀 부족할 것 없는 삶이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와 함께 무척이나 좋아하는 골프를 즐기고 있다. 전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고 말했으면서도 호화롭게 사는 그의 행태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게다가 재임 기간 중 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챙겨 대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한 그는 뇌물죄 확정 판결로 추징금 2천205억 원이 부과됐으나 이 중 1천672억 원을 내지 않고 있다. 전 씨의 자식들이 출처가 불분명한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상황에서 미납 추징금에 대한 환수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아 검찰이 그의 숨긴 재산을 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이전 정부들은 뭐했나 하고 비판하면서까지 전 씨의 미납 추징금에 대한 환수 의지를 밝혔다. 국회에서는 '전두환 추징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야당은 입법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당은 연좌 피해에 대한 우려와 소급 입법 적용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여당의 주장을 짚어 볼 필요가 있지만, '전두환 추징법'은 국회 법제실의 검토를 이미 마쳐 법적으로도 무리가 없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당의 자세는 이 사안의 의미를 간과한 채 정치적 논란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전 씨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 씨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며 비웃거나 그의 일가가 검은돈을 대물림하면서 호의호식하는 일은 두고 볼 수 없을뿐더러 다시는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 여당이 전 씨의 미납 추징금 환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잡아야 할 과거의 과제가 여전히 많지만, 시급히 닥친 이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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