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어느 사이엔가 외형적으로 잘생긴 얼굴에 많은 가치를 두는 아쉬운 세태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가 외모지상주의로 치닫는다고 해서 모든 청소년들이 신체와 얼굴을 바꾸어야 한다고 몸살을 앓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차이가 무엇일까? 당연히, 아이가 자기 신체와 존재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몇해 전 일이다. 어느 남자 고등학생이 성형수술을 요구하다 어머니와 협상이 잘 되지 않아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가 보기에 아이는 키도 컸고 덩치도 있어 믿음직스런 체형이었고 이목구비도 뚜렷하여 개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의 주인인 아이의 말은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제 얼굴이 너무 크고 머리도 둥글게 생겨 짜증나고요, 코도 너무 크고요, 눈은 어리석어 보여서 싫고요, 모두를 반드시 고쳐야 해요!"
아이는 자신에 대한 '신체 이미지'는 물론 '성품 이미지'까지 심각할 정도로 손상되어 있었다. 신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을 만들었고 우울과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성격은 자기답게 살지 못하고 늘 불행한 개구리 왕자처럼 '마법'에 갇혀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으리라.
필자는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독특한 제안을 했다. 이윽고 그날 근무하는 여섯 명의 상담 연구원들 앞에 아이를 세우고 부탁을 했다.
"선생님, 이 학생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느낌이나 이미지에 대해 정직하고 솔직하게 한 말씀씩 해 주세요." 연구원들의 피드백(feedback)은 당연히 아이의 '신체 이미지'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아울러 아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멋지고 유능한 모습을 탐색해 준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그날 연구원들의 아이 존재에 대한 '긍정적 자극'은 마치 개구리 왕자가 마법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따뜻한 입맞춤의 역할을 한 것일까? 아이는 그날, 자기 모습이 투박하고 우스꽝스럽다 못해 징그럽게 생긴 개구리 왕자라고 생각한 것에서부터 제3자의 새롭고 창조적인 '재평가'를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기를 찾은 듯했다.
필자가 진행한 상담은 아이의 신체에 대한 성형수술이 아닌, 신체를 성형수술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주는 '마음의 수정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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