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백일장] 수필 그늘의 노래를 들으면

김상민(대구 북구 산격4동)

성당 나무가 주는 그늘로 들어갔다. 온몸의 세포가 되살아나고 마음에 탄산음료 같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 발밑에서 열심히 돌아다니는 벌레가 보인다. 바쁜 삶에 지쳐 평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그늘이 알려주고 있다.

인생이 나무라면 나는 그늘과 같은 존재다. 내게도 성당 나무의 그늘처럼 인간이라는 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찾아오는 이는 없다.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감춘 탓에 내 그늘의 소중함과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내 그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누가 내 그늘에 찾아올 수 있을까.

인생의 그늘은 한순간에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래 견디고 인내할 때 만들어진다. 그늘은 나 스스로가 가장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므로 내게 그늘이 없다면 나는 쉴 곳이 없어진다. 나무가 겨울이라는 가혹한 고통의 시간을 참고 여름에 그늘을 드러내듯이 나 또한 절망이라는 세월을 견뎌낸 자세로 그늘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나무 그늘에 앉아 내가 편안하게 쉬듯이 다른 사람도 내 삶의 그늘에 들어와 편히 쉴 수 있다.

사는 동안 우리는 그늘과 햇볕을 동시에 만난다. 햇볕이 있어야 그늘이 있고 그늘이 있어야 햇볕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 햇볕만 바라며 내가 바라는 일이 모두 성공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햇볕만 원하면 내 인생이라는 땅은 황무지가 돼 버릴 것이다.

더러는 시련의 강풍도 불어야 하고 좌절의 폭설이라 할지라도 쏟아져야 한다. 그래서 인생의 땅에서 자란 나무가 수풀을 이루고 그 숲의 그늘에 앉아 내가 쉬었다 다시 전쟁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햇볕만 계속되는 인생이라면 그것은 삶의 그늘을 사라지게 만드는 절망의 햇볕을 바라는 일이다.

나무 그늘은 어떤 대가도 원하지 않는다. 찾아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시원한 휴식처와 상쾌한 바람을 전부 내어준다. 그늘의 노래를 들으며 어머니 품에서 느낄 수 있는 넉넉함과 아득함을 다시 한 번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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