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란 지식을 계발하는 하나의 교육기관일 뿐만 아니라 국제 간의 평화를 유지할 수도 있고 전쟁을 도발할 수도 있으며 정치를 지도할 수도 있을 만큼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민족종교 천도교는 국운이 다해가던 조선 왕조 말 2천만 조선인의 교육과 지식계발을 위해 인쇄시설을 갖추고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발의로 1906년 오늘 천도교 기관지인 '만세보'(萬歲報)라는 일간신문을 창간, 발행했다. 한자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국한문 혼용과 함께 한자 옆에 한글로 음을 달기도 했다. 고종 황제도 자신이 쓸 수 있는 궁중의 돈(내탕금)으로 지원을 했다.
사장은 1919년 3·1만세운동 때 33인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는 독립운동가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맡았다. 그는 역관 출신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역관이 됐다가 후일 '한성순보'의 기자로도 활약했고 정부 관료생활을 했던 개화적인 입장의 인물이었다. 친일파 공격에 앞장섰던 만세보가 1907년 6월 29일 제293호로 종간호를 내고 문을 닫고 1909년 '대한민보'가 창간하자 다시 사장을 맡았다. 광복 후엔 매일신보사와 서울신문사 명예사장이 되는 등 언론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북한의 6·25 남침전쟁 중 대구에 피란왔다 생을 마쳤고 장례는 사회장(社會葬)으로 치러졌다. 정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을 수여했다.
정인열<서울지사장>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