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가장 먼 여행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언뜻 보이지 않는다지만, 보이지 않기에 더더욱 소중한 것들을 온몸으로 새록새록 느낄 수도 있다. 소리, 냄새,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로 세상을 보고 느끼는 소년이 있다. 날개가 꺾인 다음에야 땅을 딛고 날아오르려던 꿈이 스스로에게 얼마큼 절실한 것이었는지 깨달으며 눈물짓는 소녀가 다가왔다.

'터치 오브 라이트'(Touch of the Light, 2012)는 피아니스트와 무용수를 꿈꾸는 눈이 먼 유시앙과 가난에 찌든 치에가 그렇게 스치듯 만나고, 잃어버렸던 꿈과 잊히지 않는 아픔을 주고받다가, 마침내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 일으켜주고 함께 날아오르는 이야기다.

"네가 장님이라서 봐준 거야." 어린 날 음악경연대회에서의 우승으로 들떠 있던 유시앙의 등 뒤로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던 친구의 한마디 말. "춤을 추면 밥이 나오니, 어디 돈이 나온다니?" 꼴같잖다는 듯이 혀를 차며 쏟아내던 치에 엄마의 끝없는 말들.

햇살 쏟아지던 어느 초여름 오후. 용을 써 뿌리치고 한참을 달려왔노라고, 겨우겨우 벗어났다고 한숨 쉬고 뒤돌아보면, 다시 거기 그 자리에 뒤따라오고 있다. 어두운 복도 뒤쪽의 그림자로, 혹은 그칠 줄 모르는 장맛비로 버티고 서 있다. 뒷덜미 잡혀 주춤거리며, 혹은 젖은 날개 축 늘어뜨리고 되돌아오는 길에서 서로 만났다. 자기보다 더 지치고 꺾인 것만 같아 등을 토닥토닥 거리노라니, 자기가 먼저 위안을 받으며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는 기적을 만난다. 상대방의 몸짓 하나하나가 들려오고, 소리가 보이고 생생하게 만져지기까지 한다. 몸짓으로 풀어내고, 소리로 그려내는 빛의 축제. 마침내 환하게 깨어나고, 함께 피어난다.

대구 사회복지영화제에서 배리어-프리(barrier-free) 판으로 만났다. 시각장애인에게는 말로, 청각장애인에게는 자막으로 다시 화면을 들려주고 읽어주는 것이다.

"관람 중에 잠시라도 두 눈을 감거나 귀를 막아보자. 이웃들의 불편함을 함께 느껴보고, 같이 호흡해보자." 상영 전에 진행자가 일러주었다. 영화가 마치고서야,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알게 되었다. 이중으로 마련된 설명과 자막들이 도리어 장벽처럼 여겨졌고, 더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서 아등바등거리고 있던 자화상을 말이다.

'일생 동안의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쇠귀 신영복 선생님이 일러주신다. 참 멀기도 멀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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