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학생 8천여 명 규모인 지역의 A대학. 이 학교에는 3천㎸A 규모의 변압기 3대가 설치돼 있어 총 9천㎸A 규모다. 이는 이 대학이 소비할 수 있는 전력이 9천㎾라는 의미로 이른바 '계약전력'이다. 이 전압기에는 2만2천900V의 전력이 들어와 이 전압기를 거쳐 3천300V로 떨어진다. 낮춰진 전압은 교내 20여 개 건물에 공급되고, 건물마다 설치된 소규모 전압기를 통해 380V 또는 220V로 더 낮춰 강의동이나 교수연구실 등으로 공급된다. 하지만, 이 대학이 올 들어 최대 사용한 전력은 3월로 1천700㎾에 불과하다. 9천㎸A 중 7천300㎸A 규모의 변압기는 사용되지 않는 셈이다. 문제는 평소 사용하지 않는 7천300㎸A에도 전류가 필요한 탓에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 이 학교 관계자는 "기숙사 준공 당시 심야전력 사용을 위해 3천㎸A의 변압기를 새로 설치한 것을 2년 전 일반으로 전환한 탓에 전압기 규모가 커졌다"며 "향후 학교가 더욱 성장할 것에 대비해 변압기 용량을 크게 설치했다"고 말했다.
#2. 성서공단의 폐수를 정화하는 대구시 산하 모 기관은 4천㎸A 규모의 변압기를 보유하고 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4천㎸A 예비 변압기도 함께 설치했다. 폐수 처리 기관의 특성상 변압기 고장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서다. 하지만 이 기관이 최대 사용하는 변압기 용량은 1천㎸A에 불과하다. 나머지 3천㎸A는 사용하지 않지만 전력이 소모되고 있다.
올여름 일부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중단되면서 블랙아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아파트, 빌딩, 학교, 공장 등지에 설치된 변압기가 필요 이상으로 설치돼 전력 낭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변압기는 발전소와 송전소를 거치면서 승압과 강압된 전기를 일반 가정 또는 공장 등지에서 사용 가능하도록 220V 또는 380V로 변환시키는 장치다. 일반 가정이나 상가 등이 사용하는 저압전력은 한국전력공사가 무료로 변압기를 설치해주지만 500㎾ 이상의 고압전력이 필요한 빌딩, 학교, 공장 등지는 사용자가 비용을 부담해 직접 설치한다. 전력 사용자는 건물의 용도에 따라 변압기의 용량을 설치하고 한전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이를 허용하고 있는 데 변압기의 용량이 이른바 '계약전력'이다.
◆변압기 규모가 너무 크다
한전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대구경북에서 전기를 공급받는 수용 호수는 총 258만 호. 이중 고압전력을 사용하는 호수는 3만7천여 호(1.4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저압전력을 사용하는 일반주택, 상가 등이다. 하지만 소비량은 고압전력량(37억3천여㎾h)이 압도적으로 많고, 저압전력량(10억7천여㎾h)은 고압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고압전력이 사용 호수로는 적지만 소비량으로는 훨씬 많은 구조다. 한전은 저압전력의 변압기는 무료로 설치해주지만, 고압전력 사용처에는 자비를 들여 설치토록 하고 있다. 고압전력 사용자들이 변압기의 규모를 지나치게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변압기 규모가 바로 해당 사용자와 한전의 계약전력이 된다.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의 경우 750㎸A 변압기 3대와 500㎸A 변압기 2대 등 총 5대가 설치돼 있고 합친 변압기 용량은 3천250㎸A다. 이는 계약전력이 3천250㎾라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1년 중 전력을 최대 사용한 지난해 8월 사용한 전력은 1천68㎾에 불과해 변압기 용량으로 따지면 1천68㎸A만큼 사용했다. 변압기 전체 용량의 32.8%만 사용한 것. 실제 고압전력 사용자 대부분은 보유한 변압기 용량의 30% 내외 정도만 사용하고 있다. 한전대구경북본부 관계자는 "고압전력 사용자 중 변압기 용량의 30% 정도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문제는 전체 변압기 규모 중 30% 내외만 사용해도 변압기 전체에 전류가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경일대 배영호 교수(철도'전기공학부)는 "변압기는 시동을 걸어 놓은 자동차와 같다. 전체 용량의 단 10%만 사용해도 변압기 전체에 전류를 흐르게 해야 한다. 여기에서 전류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했다.
◆큰 변압기 선호 이유는?
규모가 큰 변압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다. 변압기가 크면 클수록 전력 보유량이 많아지면서 사고의 위험이 줄어든다. 실제 2011년 4월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 간 경기 도중 정전 사태가 발생해 경기가 중단된 사고의 원인도 변압기였다. 조명탑으로 들어오는 6천600V 전압을 380V로 변환하는 역할을 하는 변압기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전력 사고의 상당 부분이 변압기에 있자 사고를 우려한 고압전력 사용자들이 전력 손실이 있음에도 큰 변압기를 선호하고 있다. 한전대구경북본부 관계자는 "한전은 고객이 원하는 만큼의 전력을 공급할 의무가 있고,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추궁에 대한 부담도 있어 고객이 원하는 만큼의 변압기 용량을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또 싼 요금도 큰 변압기를 선호하게 하는 원인이다. 한전은 한 해 중 최대수요전력을 기록한 당월의 요금이 변압기 총 용량의 30% 미만일 경우 해당 변압기의 30%에 해당하는 요금만 받는다. 이를 요금적용전력이라 부른다. 예컨대 1천㎸A 용량의 변압기를 보유한 고압전력 사용주가 4월 250㎸A를 사용해도 요금은 300㎸A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필요한 변압기 규모보다 훨씬 큰 변압기를 설치하고 30% 미만으로 사용하면서 요금도 30%만 적용받는다는 것.
한 전력 전문가는 "요금적용전력 규정 탓에 변압기를 최대한 키우고도 요금을 많이 내지 않게 된다"고 했다.
◆적정 규모로 에너지 사용 줄여야
학계에서는 변압기 용량의 50~70%를 사용할 때 효율이 최고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컨대 1천㎸A 규모의 변압기를 설치하면 500~700㎸A 규모를 사용하는 것이 효율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나머지 300~500㎸A는 해당 건물에 전력을 풀 가동했을 경우를 대비한 여분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무턱대고 큰 변압기를 설치할 것이 아니라 최고 효율을 낼 수 있도록 적정한 규모의 변압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한 민간 전력 전문가는 "변압기 용량의 50~70%가 사용될 수 있도록 적정한 규모의 변압기를 설치하면 에너지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변압기의 규모만 줄여도 국내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5~7%가량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일대 배영호 교수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변압기를 교체할 때 안정성 때문에 필요 이상 규모의 변압기를 설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적정한 규모의 변압기를 사용하면 5%가량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활용하지 않는 변압기에서 어느 정도 전력이 손실될까?
한 민간기업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3천㎸A변압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시간당 5.6kW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한전의 고압전력A(표준전압 3천300V~6만6천V)의 ㎾h당 여름철 요금(113.40원)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635원이다. 하루(24시간)에 1만5천여원이 손실된다. 가동하면서 나오는 손실(부하손)은 하루에 5만7천여원이 된다. 즉 3천㎸A변압기를 사용하면 하루에 7만2천여원이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것이다.
◆요금제도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고압전력 수요자들이 변압기의 규모만 적정 규모로 돌려도 '블랙아웃'의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예비전력량이 5~6%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소위 '놀고먹는' 변압기의 규모만 줄여 5~7%의 에너지 절감을 한다면 블랙아웃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강제로 변압기의 규모를 줄이지 못하면 요금제도 개선을 통해 적정한 규모의 변압기를 설치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변압기 기본요금을 변압기의 최고 효율인 50~70% 선에 맞춰서 부과하자는 것이다. 변압기 설치 용량의 50~60%를 기본요금으로 하면 고압전력 수요자들이 요금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적정한 규모의 변압기를 설치한다는 것.
한 전력 전문가는 "정부가 블랙아웃에 대한 우려를 국민과 기업들이 전력을 적게 쓰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본질을 외면하는 처사"라며 "적정한 규모의 변압기만 설치하도록 제도적으로 유도하면 쓸데없이 낭비되는 전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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