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리랑' 연주에 고려인-방문단 모두 손잡고 열창

경북도 해외동포 정체성 찾기…우즈베키스탄과 교류의 장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청소년들로 구성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청소년들로 구성된 '꽃봉오리' 무용단의 부채춤 및 고려인 북춤 공연 모습.
이달 5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시내 한 식당에서
이달 5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시내 한 식당에서 '경상북도'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문화교류 한마당'이 성황리에 열렸다.

1937년 가을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한민족 17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시베리아 건너 1만5천 리(약 6천㎞) 떨어진 이역만리의 땅으로 살던 집과 들판의 곡식 모두 버리고 가야 했다. 왜 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스탈린이 "한인들을 국경에 두면 첩자가 될 수 있다"며 내린 강제이주 명령이라는 얘기만 전해졌다.

가축을 싣던 화물칸을 개조한 열차 한 칸에는 4가구 20~30여 명이 짐짝처럼 실렸다. 하나 둘 아이들이 죽어나갔지만, 열차는 계속 달렸다. 관리자는 시신을 계속 두면 병을 퍼뜨린다고 윽박질렀다. 부모들은 달리는 열차 바깥으로 울며 아이의 시신을 내던져야 했다.

"한 달 반 걸려 도착한 우즈베키스탄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어요. 겨우내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봄에는 황무지를 개척해 콜호스(집단농장)를 일구며 '고려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70여 년 세월이 흘렀어요."

우즈베키스탄은 한민족과 인연이 깊다. 신라와 바깥 세계를 이어준 찬란했던 실크로드, 그 중심 도시였던 '사마르칸트'가 있는 곳이고, 구소련에서 당시 가장 많은 고려인이 강제 이주당해 고생스럽게 터전을 일군 곳이기도 하다.

경상북도가 우즈베키스탄을 찾았다. 경북도가 주최하고, (사)인문사회연구소 주관 및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문화협회 후원으로 '경상북도'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문화교류 한마당'이 이달 5일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시내 한 식당에서 열린 것.

◆경북도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사회 만나다

이날 행사는 고생스러웠던 강제이주 및 개척의 역사를 경험한 고려인 1, 2세대는 물론 이후 태어난 3, 4세대 청'장년층 등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모든 세대가 모인 자리였다. 이들과 경북도 관계자 및 취재진 등 200여 명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이날 공연 구성도 세대 간 어우러짐이 주제였다. 고려인 1, 2세대 어르신 16명으로 구성된 합창단 '사랑'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민요 및 가요를 번갈아 불렀다. 고려인 청소년 8명으로 구성된 '꽃봉오리' 무용단은 부채춤, 고려인 북춤, 굴다스타(우즈베키스탄 전통춤) 등을 선보였다. 또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포가수 신 갈리나 씨는 신곡 '코리아'를 첫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경북도립국악단 공연팀이 북, 장구, 꽹과리, 징, 태평소를 한데 어우른 풍물 가락으로 화답했다. 경북도립국악단 공연팀은 마지막 순서에서 아리랑을 연주해 행사 참석자 모두가 손을 맞잡고 아리랑을 열창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이끌어냈다.

공연이 끝난 후 만찬 때 무대에 나와 마이크를 잡은 동포가수 김 유리 바르로비치(51'3세대) 씨는"부모님의 나라 한국을 생각하며 연습한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을 오늘 불렀다"고 말했다. 경북 영양 출신인 남 류드밀라(66'여'2세대) 씨는 "나는 경북 영양 남씨다"며 "고향땅에서 이렇게 찾아와 잔치를 벌여주니 고맙고 반갑다"고 말했다.

◆고국과 교류에 목마른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사회

우즈베키스탄은 구소련에서 독립한 12개 국가 중 현재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고려인이 살고 있는 국가다.

그만큼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사회는 조국과의 교류에 목말라 있다. 박 빅토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문화협회 회장은 "고려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풍습은 물론 말과 글을 점점 잊고 있어 문화교류가 절실하다"며 "다행인 점은 K-POP(케이팝) 등 한류가 인기를 얻으며 한국 문화를 접하고, 한글을 배우려는 젊은 층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은 (사)인문사회연구소 이사장(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은 "미국, 일본, 중국 등과 견줘 규모가 작지 않은 우즈베키스탄 재외동포(고려인)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교류는 많이 부족하다"며 "이번을 계기로 다양하고도 일상적인 교류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4회째 맞은 경북도 해외동포 정체성 찾기 사업

경북도는 재외동포사회와 소통하고 문화교류를 지속하기 위해 '해외동포 정체성 찾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0년 중국 동북 3성, 2011년 러시아 사할린, 지난해 독일 에센을 찾아가 수십 년간 고국을 그리며 살고 있는 동포들을 만났고, 이번이 네 번째 만남이다. 특히 이번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과의 만남은 '천 년 전 신라인의 길, 실크로드 그리고 까레이스키'란 주제로 콘텐츠전시회, 스토리북, 인문학 강좌, 다큐멘터리(대구MBC 제작) 등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져 지역민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김호진 경북도 국제비즈니스과장은 "'경주-이스탄불 문화엑스포'를 맞아 오는 9월에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박물관 인근에 신라와 실크로드의 역사적 관계를 설명한 표지석을 세울 예정"이라며 "우즈베키스탄은 신라부터 경북도까지 특별한 인연과 의미를 지닌 곳이다. 앞으로 다양한 교류를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사진'한금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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