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英 학자 그레이슨 씨, "십자가 새긴 요여, 기독교 상징이 민속종교로 토착화 표현"

요여 연구위해 한 달간 한국 머물러

인류학자이자 종교학자인 그레이슨 교수(사진 왼쪽)가 제자인 조원경 목사와 함께 경산 상엿집에서 한국상례문화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진만기자
인류학자이자 종교학자인 그레이슨 교수(사진 왼쪽)가 제자인 조원경 목사와 함께 경산 상엿집에서 한국상례문화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진만기자

"한국 사람들은 '상례 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은 적은 것 같습니다. 옛 문화와 유물은 지키지 않으면 금방 사라집니다. 정부의 보존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후원을 통해 잘 보존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영국 셰필드대학에서 22년간 한국학을 가르치는 등 한국과 48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제임스 헌틀리 그레이슨(69'인류학 종교학) 명예교수는 한국 상례 문화 및 관련 유물에 대한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3년 만에 한 달 일정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이유는 요여(腰輿'시체를 묻은 뒤 혼백과 신주를 모시고 돌아오는 작은 가마)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본지 5월 30일 자 24면 보도)

그가 상엿집과 요여 등을 접한 것은 3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이다. 당시 제자인 조원경(56) 사단법인 나라얼연구소 이사장(하양감리교회 목사)은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서 혐오시설로 전락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300여 년 된 상엿집과 상여 등을 매입했다. 이를 하양읍 무학산으로 옮겨 복원해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66호로 지정받았다. 그레이슨 교수는 이 상엿집과 함께 조 목사가 여러 곳에서 구입한 17개 요여 중 195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와 도교, 기독교를 상징하는 연꽃과 구름, 천주교 십자가 문양이 그려진 요여가 눈에 띄어 이를 연구하기 위해 방한했다가 18일 귀국길에 올랐다.

그레이슨 교수는 지난 한 달 동안 경산상엿집과 요여 등이 있었던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를 여러 차례 답사했다. 자천리 마을 주민들도 만나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그러면서 연꽃과 십자가가 함께 그려진 요여가 있던 자천3리에는 110년 전 이미 교회가, 77년 전 천주교 공소가 직선거리 50m 정도로 떨어져 들어섰고, 인근에는 암자도 있어 한 마을에 여러 종교가 '공존'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요여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통해 기독교와 천주교가 전래되면서 우리 민속문화 및 종교와 빠르게 혼합돼 토착화됐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조원경 목사는 "외국인 은사께서 현재 우리는 관심이 적은 상엿집과 요여 등에 대해 큰 관심을 쏟으며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도 부끄럽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조선 500년은 유교 상례 문화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상엿집은 우리의 전통적인 삶과 죽음의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자 시각적 자료"라며 "무학산 상엿집 주위에 전통상례문화 전시관과 명상관을 지어 죽은 자를 통해 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장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