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구멍 난 대법원 전자 독촉 시스템

대법원의 전자 독촉 시스템을 악용해 수십억 원을 챙긴 불법 추심 업자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기소됐다. 이들은 소멸시효가 끝나 권리 실행이 불분명한 물품 대금 채권 등을 헐값에 사들이고 나서 다수 채무자를 상대로 전자 지급명령을 신청, 채무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지급명령이 확정되면 채무자의 월급, 부동산 등을 압류하는 방법으로 채권을 챙겨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전자 독촉 시스템은 채무 분쟁이 발생할 때 법원을 찾거나 소송하는 등의 번거로움을 없애고 신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인터넷을 통해 지급명령 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다. 불법 추심 업자들은 채무자들의 신용 정보를 무단으로 조회하고 채권 당사자인 것처럼 속여 이 제도를 악용했다. 피해자들은 이의신청 절차나 전자 독촉 시스템으로 접수된 지급명령 신청이라도 이의신청은 서류로 해야 하는 방식 등을 잘 몰라 피해를 당했다. 과거에 산 물품을 반품하고도 이들의 독촉에 시달려 돈을 준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전자 독촉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일어난 첫 범죄인 만큼 보완이 시급하다. 피해자들이 제대로 대처 못 한 잘못이 있지만, 제도만 만들면 그뿐이라는 안일한 대처가 범죄를 불렀다고도 할 수 있다. 채무 분쟁 당사자만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이므로 전자 지급명령 신청자에 대한 확인과 검증이 철저히 이뤄지도록 해야 하며 이의신청을 안내하고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취지의 제도라도 신종 범죄에 악용된다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제도적으로 개선된다 하더라도 인터넷 범죄의 수법이 교묘히 진화하고 있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터넷 제도를 만들 때 범죄 피해까지 고려하는 세심한 통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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