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26>경주에서 만난 근대문화

'신라' 지겨울 즈음 '근대'가 노올∼ 자

경주에 신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옛 도심에는 조용히 묻혀 있는 근대문화재가 산재해 있고, 양동마을은 더 말할 나위 없는 대표적인 유교 문화다. 하지만 경주 도심의 근대문화재들은 변변한 안내판도 없을 정도로 외면받는다. 경주시는 대구 중구의 근대골목투어가 옛 골목에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접목시켜 성공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 이른 더위에 도심 거리도, 양동마을도 한껏 달아올랐다.

◆옛 도심 근대문화 둘러보기

경주 도심에는 경주문화원과 동경관, 경주읍성, 집경전터 등 근대문화재들이 숨어 있다. 경주문화원 주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경주 관아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문화원 안에는 옛 박물관인 향토사료관과 양무당(옛 병영관리소), 성덕대왕신종을 걸었던 종각 등 옛 건물들이 있지만 문화재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향토사료관 앞에는 1926년 스웨덴 황태자인 구스타브 아돌프 6세가 심은 전나무가 뻗어 있고, 사료관 뒤에는 수령 500살이 넘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KT&G 옆 화랑수련원은 경주의 첫 서양식 의원이었던 야마구치 병원 건물이다. 경찰서 맞은편 사회교육원(옛 교육청) 건물 뒤에는 옛 건물이 보이는데 경주관아 객사로 사용하던 동경관이다. 본래 세 채의 건물이 맞닿아 있었지만, 왼쪽 건물만 남고 나머지는 사라졌다. 경주역 방향으로 걸어가면 경주읍성 성벽을 볼 수 있다. 90m 길이로 새로 복원한 북쪽 성곽과 옛모습인 성벽이 혼재돼 있다.

계림초등학교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뒤편으로 가면 조선 태조의 어진을 모셨던 석실을 만난다. 어두컴컴한 석실인데 일제강점기에는 인력거 보관소로 쓰이기도 했다. 본관 앞에는 집경전 하마비와 집경전 옛터임을 알리기 위해 세웠던 '집경전구기' 비석이 서 있다. 정조의 친필이다.

공단 건물 담장을 끼고 이어지는 골목길은 근대 골목이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북문 터지만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다.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경주문화원 있는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일본식 절인 서경사가 있다.

동대로를 따라 길을 건너면 김동리 생가터와 삼랑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김동리 생가 건물은 헐려 주차장과 텃밭으로 쓰이고 안내판만 서 있다.

◆관광, 불편한 점부터 없애는 게 우선

경주에 게스트하우스가 100여 곳을 헤아린다. 대부분 최근 수년간 생겨난 곳들이지만 추종원 씨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벌써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는 "상호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추 씨의 게스트하우스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주로 독일이나 프랑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120년 된 한옥에 방 10칸을 게스트룸으로 운영 중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건 세계적인 여행가이드북인 론리 플래닛에 소개되면서부터다. 론리플래닛은 여행객들이 직접 론리플래닛 편집장에게 e메일을 보내 추천하는 방식이다. 추천이 쌓이면 담당자가 직접 방문한 뒤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과정은 숙박업소 주인이 모르게 진행된다. "문 열고 3, 4년간은 손님이 거의 없었어요. 아직 국내에 게스트하우스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니까요. 한 달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없어서 공공근로나 산불감시, 관광 가이드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죠."

영어 간판과 영문 홈페이지를 만들고, 전통의상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갖추면서 손님도 꾸준히 늘었다. 자전거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중국, 제주도, 부산을 거쳐 온 프랑스인이나 칠순이 넘어 배낭여행을 다니던 독일인 할머니는 유독 기억에 남는 손님이다.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볼거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편한 점을 없애야 해요. 외국인 배낭여행객은 경주에 오면 엄청 불편해합니다. 숙박업소에서 영어가 안 되고 음식점에도 영어 메뉴판도 없어요. 시내버스에 외국어 행선지 표시도 잘 안 돼 있고요. 그런 걸 고치는 게 먼저죠."

◆양동마을에는 사람이 산다

수년 만에 찾은 양동마을. 풍경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조용한 시골마을은 학생들의 수다로 소란스러운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마을은 관가정에서 시작해 영귀정과 무첨당을 둘러보고 마을 뒤편을 돌아 서백당과 방향으로 돌아보는 게 일반적이다. 관가정 앞에는 수령이 500여 년이나 된 은행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양동마을 앞은 안락천이 형산강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수량이 풍부하고 들이 넓다. 설창산을 주봉으로 '물(勿)'자 형태의 지형으로 동네가 한눈에 확 드러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경주 손 씨와 여강 이 씨가 종가를 따로 두고 산다. 종가나 큰 기와집은 대체로 높은 곳에 있고 초가집은 평지에 있는 점이 특징이다.

마을 입구와 가장 가까운 관가정(보물 제442호)은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된 점이 특이하다. 관가정에 서면 형산강과 안강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원래 대문과 담장이 없었지만 1981년 보수하면서 새로 쌓았다. 관가정에서는 향단(보물 제412호)도 볼 수 있다. 두 곳의 뜰을 두고 전체가 '興(흥)'자 모양을 이루는데 집 안을 공개하지 않아 가까이 볼 수가 없다. 이언적 선생의 종가 별채인 무첨당에는 종손 이지락(47) 씨가 살고 있고, 월성 손 씨의 종갓집인 서백당에도 종부가 살고 있다. 서백당을 서성이는데 종부가 배수로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치우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니 "안으로 들어와 차나 한잔 하라"며 안채로 이끌었다. 직접 농사지은 매실로 만든 매실차에 얼음을 띄워 주니 초여름 더위가 씻은 듯 사라졌다. 대청마루의 열린 창 너머로 장미가 한껏 꽃을 피웠다. 바람 소리만 들릴 정도로 사방이 고요하다. "난 바깥출입을 잘 안 해요. 사람들이 와서 내 집, 남의 집도 모르고 소리 지르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난 시끄러운 건 질색이거든. 그래도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서 마을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데는 득이 된 점도 많지요." 팔순을 바라보는 종부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보존과 생활의 공존

무첨당에서 종손 이지락 씨를 만났다. 그는 대구 두류도서관 교양강좌의 일환으로 양동마을의 역사와 회재 이언적 사상을 주제로 강의에 한창이었다. "왜 양동에 왔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양동마을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건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동의 가치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겁니다."

그는 "문화를 감각으로 느낄 수 있으려면 자연이라는 공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동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어울림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격하지 않고 공존하며 상업화되지 않고 주인이 살고 있다는 것, 그 점이 양동마을의 매력이죠."

강의가 끝난 후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 씨의 가장 큰 고민은 산업사회에서 양동마을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안이다. "갑작스럽게 방문객들이 늘면서 마을 주민들도 혼란스러워하는 점이 있어요. 입장료를 받으면 집 개방은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보존 공간과 생활공간을 구분해주는 게 필요해요. 생활공간을 개방하면 사람이 살 수가 없잖아요.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해줘야 박제화되지 않죠. 양동의 가치는 사람인데, 사람이 살 수 없으면 안 되잖아요. '전시' 위주로 가버리면 문화가 사라집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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