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대 임금 태종은 평생 손에 피를 묻혔다. 개국 때는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고려와 전쟁했고,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형제를 죽인 뒤 왕세제(王世弟)가 됐다. 조선에서 세제는 태종과 영조(연잉군)뿐이다. 태종은 왕권 강화를 이유로 끊임없이 외척을 제거했다. 처남인 민씨 4형제와 세자(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사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태종의 이러한 행보는 권력 유지 차원이었지만, 어쨌든 태종과 세종 때의 조선은 백성이 살기 괜찮은 나라였다. 태종은 백성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파괴된 벽골제를 보수하는 등 대대적인 수리 공사를 하고, 가뭄 때는 직접 하늘에 비를 빌었다. 태종이 죽을 무렵 가뭄이 심했다. 태종은 세종에게 '내가 죽어 혼이 있다면 이날 비가 오게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태종이 죽자마자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백성은 이를 감사하게 여겨 이 비를 태종우(太宗雨)라 했다.
이 이야기는 조선 중기 학자 우복 정경세(1563~1633)의 문집인 '우복집'에 나온다. 정경세는 '태종이 임종할 때 세종에게 가뭄이 극심한데 내가 비록 죽었어도 알게 된다면 이날에는 반드시 비가 오게 하리라고 말했는데 훗날 과연 그렇게 됐다. 근래 봄부터 여름까지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했는데 5월 10일 감로수 같은 비가 새벽부터 밤까지 내렸다. 이 나라 민간에서 말하는 태종우다'라고 적었다. 이는 뒤에 조선의 민간 풍습을 기록한 홍석모(1781~1850)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실렸다.
17일부터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됐다. 올해는 1981년 이후 32년 만에 중북부 지역부터 시작해 남부 지역으로 내려오는 역행 장마다. 기상청에 따르면, 곳에 따라 100㎜ 이상 집중호우가 쏟아지겠다는 예보다. 조선 초와 현재의 날짜 차이는 있겠지만 공교롭게 이번 장마는 태종우와 겹친다. 태종의 기일은 5월 10일이다. 당시 태음력을 사용한 것을 고려하면 18일인 어제였다.
또 최근 10년간을 살펴보니 2008년을 제외하면 매년 태종우가 내렸다. 사실 온대계절풍 기후인 우리나라는 이때가 장마기여서 비 올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태종이 이때 죽었고, 유언으로 '비가 오게 하겠다'고 남긴 것은 우연한 일치라기보다는 왕은 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해야 한다는 경고성 메시지가 태종우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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