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김정은과 '나의 투쟁'

히틀러가 자서전 '나의 투쟁'을 집필한 동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가 히틀러의 동료였으나 훗날 '장검의 밤' 사건 때 게슈타포에 죽임을 당한 그레고어 슈트라서가 히틀러의 감방 동료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책을 쓰라고 꾀었다는 설이다.

히틀러는 '뮌헨 폭동'으로 5년 형을 선고받고 형무소에 수감됐는데 감방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개똥철학'을 떠들어댔다. 슈트라서는 이런 장광설의 고문을 당하는 감방 동료들을 위해 히틀러에게 회상록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히틀러는 괜찮다 싶어 바로 집필에 들어갔고 감방 동료들은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다시 불려 나와 히틀러가 그날 쓴 내용을 낭독하는 것을 꼼짝없이 들어야 했다.

두 번째는 뮌헨 폭동으로 '스타'가 된 기회를 이용해 돈을 벌어보라는 나치당 출판부장 막스 아만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는 설로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아만의 조언으로 당초 '거짓, 무지, 비겁에 맞선 4년'이란 지루한 책 제목을 '나의 투쟁'이란 선동적 제목으로 바꾼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1925년 초판은 500부를 찍는 데 그쳤고 이후에도 연간 1만 2천∼1만 3천 부를 파는 게 고작이었다. 무솔리니의 혹평처럼 "이해할 수 없고 흥미롭지도 않으며 한심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으니 당연했다. 히틀러 스스로도 자기 책이 악문(惡文)이며 함량 미달임을 시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집권 첫해인 1933년 무려 150만 부가 팔린 것을 시작으로 1945년까지 1천만 부가 팔렸다. 그 비결은 국고 지원을 통한 무료 배포였다. 나치는 '나의 투쟁'을 학교나 병사에게 배포하는 것은 물론 신혼부부에게 선물로 줬는데 책값은 국고로 지출됐다. 이를 통해 히틀러는 엄청난 인세 수입을 올렸다. 히틀러는 그 돈을 스위스 UBS 은행에 입금해 측근들이 관리하도록 했다.

북한 김정은이 고위 간부들에게 '나의 투쟁'을 선물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을 짧은 기간 내에 재건한 히틀러의 '제3제국'을 잘 연구하고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광인(狂人)에게서 살길을 찾겠다는 것인데 김정은의 정신세계는 드디어 갈 데까지 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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