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6'25가 되면 터키 수도 앙카라의 한국정원에서는 작은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터키 한국영사관과 함께 한국전 참전용사회를 중심으로 가지는 6'25전쟁 관련 행사이다. 아침 일찍 한국정원을 찾았다. 먼저 높이 9m의 '한국 참전 토이기(터키) 기념탑에 들렀다. 경주 석가탑의 형태로 만들어진 하얀 석탑 속에는 부산 유엔공원의 터키 전몰장병들의 묘에서 가져온 흙이 안치되어 있다. 서울시와 앙카라의 자매결연을 계기로 1973년 11월, 1년여의 공사를 거쳐 세워진 탑이다. 터키 정부에서 3천300여㎡(1천여 평)의 부지를 제공해 조성된 한국공원 주변에는 아름드리 수양버들과 무궁화가 심어져 있고 담장에는 양국 국기가 장식되어 있다. 탑 주위를 돌아가며 전사자 765명의 이름과 사망 연도를 기록해 놓았다. 그들은 멀고 먼 이국땅 전쟁터에서 꽃다운 나이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었다. 기념탑 앞에서 묵념과 기도로 참전 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실크로드의 종점 이스탄불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으나 남동지역을 거치기로 했다. 도중에 '술탄한'이라는 마을에서 약 700년 전에 지어진 터키 최대의 카라반사라이를 만났다. 실크로드 대상들의 숙소는 낙타가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 단위로 지어졌으며 숙소의 기능과 함께 약탈에 대비한 요새로 조성되었다. 건물 안에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으로 자리를 분배하고 식당과 마구간 시설이 있다. 내부정원에서는 활발한 상거래도 이루어지는 등 대상들에게는 없어서 안 될 중요한 베이스캠프였다. 옛날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각 나라는 교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당시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도로, 낙타대상, 카라반사라이였다. 숙소에서는 토착민과 이민족을 구별하지 않고 3일까지는 음식을 제공하고 신발을 수선해 주었다. 낙타를 보살피고 말발굽도 달아주었다. 이 모든 서비스들은 전문 인력들에 의해 제공되었으며 대상들은 군사의 보호를 받았다. 저녁에는 음악과 춤판도 펼쳐졌고 수피즘의 신비스런 춤 공연도 있었을 것이다.
이슬람 신비주의의 교파인 메블라나 교단의 발상지 콘야에서 수피 춤 공연을 보았다. 춤을 수행의 한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이들은 신과 합일을 이루는 춤을 춘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공연장에서는 술과 음료수도 마실 수 있다. 먼저 기도를 하고 작은 북을 두드린다. 검은 망토를 벗고 한 명씩 천천히 원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한다. 점차 빠르게 돌면서 오른손은 위로, 왼손은 아래로 향한다. 위로 신의 축복을 받아 아래로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의미다. 불교의 '상구보리하화중생'인 셈. 춤을 추는 동안 세속적 욕망을 포기하고 신과 합일로 새로 태어남을 의미한다. 신과 영적인 교감 상태에 들어갔는지 춤을 추는 사람의 표정은 환각 상태에 빠진 듯하다. 그러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펼치는 공연일 뿐이다. 콘야 시내에 세워진 수피댄스 추는 모형을 보면 많은 사람에게 도시를 알리려는 홍보광고물로 보인다.
콘야에서 서쪽으로 버스로 8시간을 더 가면 석회층과 고대도시가 있는 파묵칼레에 도착한다. 마을 이름이 '목화의 성'이라는 뜻의 파묵칼레가 된 것은 마을 뒷산을 감싸고 있는 하얀 석회층이 마치 목화솜으로 만든 성곽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석회 성분을 품은 35℃ 정도의 물이 지하에서 솟아나와 언덕을 흐르며 석회가 남고 그 위에 계속해서 침전이 진행되어 거대한 석회언덕이 형성된 것이다. 매년 1㎜ 정도 증가하는 석회층의 나이는 1만4천 살 정도라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누구나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들어간다. 무릎 정도 깊이의 따뜻한 물속을 걸어가 본다. 새하얀 석회암 바닥이 발바닥을 자극해 기분이 포근해진다. 근년 들어 자원보호와 온천수량의 감소로 출입을 일부 통제하나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하루 종일 북적인다. 석회층 뒤편 언덕 위로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가 발굴되고 그 일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더욱 유명해져 터키 관광의 필수 방문 지역이 되었다. 또 최근에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숙소와 각종 개발로 옛 모습을 잃어간다는 우려도 있다.
용서와 관용 속에 선한 삶을 강조하며 수행하는 수피즘의 춤도 마찬가지다. 터키의 오래되고 숭고한 종교적 자산으로 그 숭고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것은 파묵칼레의 무분별한 개발과 과도한 상행위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이들 실크로드 상에 있는 역사문화자산 모두는 그 지역만의 정신문화와 유적이 아닌 전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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