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산격동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모(25'여) 씨는 무더위에도 창문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발코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담배연기' 때문이다. 문을 활짝 열기도 어렵다. 복도에 퍼져 있는 담배연기가 고스란히 집안으로 스며들어서다. 창문을 열어놓고 외출이라도 하는 날엔 널어놓은 빨래, 이불에 담배 냄새가 밴다. 정 씨는 "공원, 버스정류소, 식당 등 금연구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에서 흡연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요즘 같은 전력난에 창문도 못 열고 꼼짝없이 에어컨만 틀게 됐다"고 불평했다.
◆아파트는 담배전쟁 중
'층간 소음'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층간 간접흡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더운 날씨 탓에 창문을 열고 생활하는 가구가 많은 요즘 열린 창문 틈 사이로 흡연가구와 복도, 계단 등에서 밀려오는 담배연기로 비흡연자들이 시달리고 있는 것. 게다가 아무 데나 버려진 담배꽁초는 아파트 미관마저 해치고 있어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담배로 인한 불만이 주민들 사이에 높아지고 있지만 강제할 방법은 마땅히 없는 실정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상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은 금연시설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어린이보호구역인 놀이터를 제외한 아파트의 모든 공간은 현재 '흡연구역'이다. 정부가 공원, 버스정류장과 일반 음식점, PC방 등 다중이용시설 등으로 금연구역을 점차 확대하고 흡연구역을 좁혀가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간접흡연으로 인한 민원이 연일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쏟아지지만, 관리사무소도 제재할 방법이 없어 경고문 부착이나 주의를 당부하는 방송 등에만 의지하고 있다.
신기락 아파트사랑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창문,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이웃집 담배연기로 고통받는 아파트 주민들이 많지만 마땅한 규제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며 "아파트는 단독주택이 아닌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인 만큼 이웃 간에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금연아파트 바람
공동주택에서 흡연이 이웃 간 다툼으로 번지자 서울, 부산, 구미, 포항 등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금연아파트'를 해결책으로 내놓고 있지만, 대구시는 깜깜무소식이다.
지난 2007년 금연아파트 제도를 전국에서 처음 도입한 서울시는 이달 현재 203개 아파트 단지가 금연아파트 인증을 받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금연아파트 인증을 원하는 아파트는 자율추진단을 구성해 금연 홍보물을 곳곳에 부착하고 복도, 주차장, 놀이터 등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다만, 아파트가 금연시설 대상이 아닌 주거지역인 만큼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 아파트 단지 내 금연이 잘 지켜진 곳에 대해 서울시는 '금연아파트' 표지판을 설치하고 인증서를 주고 있다. 시행 첫해 18곳에 불과했던 금연아파트 인증 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말 74곳으로 껑충 늘었으며 재인증 받은 아파트는 129개에 달할 만큼 주민 참여도가 높다. 재인증은 2년마다 일정 심사를 거쳐 이뤄진다.
구미시도 지난해부터 금연아파트 제도를 도입해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구미시에 따르면 지난해 3개 아파트가 금연아파트 인증을 받은 데 이어 올해는 4개 아파트가 금연아파트 인증을 신청한 상태다. 포항시 북구보건소도 올해부터 금연아파트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다음 달 1일부터 PC방, 호프집 등 공중이용시설 금연 단속이 시작되고 있어 금연아파트 제도를 시행할 여력이 없다"며 "이미 지정된 금연구역에 대한 단속이 정착되면 금연아파트 인증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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