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생 아르바이트 백태] 아르바이트 변천사

과거엔 낭만, 지금은 '생존의 수단' 아쉬움도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본업과는 별도로 수입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이란 말로 본래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의 노동'업적이라는 뜻에서 바뀌어져 쓰이고 있다. 즉, 학생이나 직장인이 돈을 벌기 위해서 학업이나 본업 이외 부업으로 하는 일을 말한다.

학생 아르바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뒤의 경제생활이 어려웠던 혼란기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빈곤 때문에 퇴학'휴학자가 늘자 대학 당국과 정부가 적극 나서 알선하기도 했다. 그뒤 경제적 성장을 이룬 후 노동력 부족과 서비스산업의 발달, 여가 시간의 증대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특히 서비스산업이 발달하면서 아르바이트 근로자만으로 유지되는 사업도 생겨났다. 최근에는 대학생 아르바이트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한 아르바이트가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아르바이트란 말이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0, 70년대 서독에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대거 진출하면서부터다.

대학생들의 대표적 아르바이트인 과외가 금지된 시기에는 '몰래바이트'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1990년대 후반부엔 컴퓨터의 보급과 더불어 컴퓨터식 축약어인 '알바'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하지만 저임금으로 인한 노동력 착취, 번거로운 구제절차를 악용해 급여를 떼먹거나 체불하고 폭언 등 인권침해 폐해도 발생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알바가 취업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업무보조보다는 창업형으로 아르바이트가 진화하고 있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예나 지금이나 '아르바이트' 하면 대학생이 먼저 떠오른다. 1970년대에는 대학생들의 과외 아르바이트가 인기를 끌었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든, 용돈을 벌기 위해서든 대부분 대학생들에게 '알바'는 필수였다. 그때는 지금과 형식이 조금 달랐다. 가정교사처럼 학생과 함께 살면서 공부를 가르치는 '입주 과외' 형태가 많았다. 사범대학이나 인기학과 학생들은 부잣집 중'고교생들의 '전용 가정교사'로 입주해 공부를 가르쳤다. 주인집 아들'딸의 성적이 올라가면 보너스로 신사복을 선물받거나 레스토랑 같은 데서 식사를 대접받기도 했다. 가난하지만 머리 좋은 남자 명문대생과 제자인 부잣집 딸의 러브스토리는 심심찮게 회자되곤 했다. 과외 알바는 1980년 신군부가 과외를 전면 금지할 때까지 인기를 누렸다.

7080세대를 대표하는 통기타, 단발머리 등을 떠올릴 때 함께 연상되는 것은 바로 '음악다방'이다. 그곳에서 음악을 선곡하고, 사연을 읽어주던 음악다방 DJ들은 7080시대의 대표적인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음악다방 DJ는 지금의 라디오 DJ 역할을 했다. 번화가에는 연예인처럼 인기를 끌던 전업 DJ들이 활동했고, 학교 주변에는 학생 아르바이트 DJ들이 많았다. 우연히 알바생으로 시작했다가 인기를 끌어 전업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각 가정에 오디오가 보급되고, LP 대신 CD를 사용하게 되면서 음악다방과 알바 DJ들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1980년대 들어서는 음식점'호프집 서빙이 새로운 알바로 등장했다. 80년대 후반기 들어 자동차 수요와 함께 주유소 알바도 인기를 끌었다.

1970, 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에는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받으면, 막걸리나 소주만 마시던 가난한 친구들에게 돈가스나 생맥주 한잔 '쏘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가 되어버린 지금 대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낸다.

한 대학 교수는 "1980년대 대학생들은 낭만적 방황을 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갔지만 오늘의 대학생에겐 청춘의 방황이란 사치스러운 단어"라고 했다.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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