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조심조심 털 자르기

"어머, 엄마! 체셔 다쳤어!"

정말이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목욕을 하는 김에 겨드랑이의 뭉친 털을 잘라주려고 했을 뿐인데, 체셔는 그날따라 빨리 나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고 몸부림치는 체셔에게 급하게 한 서툰 가위질이 참사를 불렀다. '냥!' 하는 체셔의 외마디 외침을 여느 때처럼 투정이라고 생각하며 목욕을 마친 후 거실에서 그루밍 중인 체셔를 지켜보던 나는, 크림색 털 사이에서 시뻘건 부분을 목격했다. 처음에 단지 '뭐가 묻었지?' 하며 다가갔던 나는 상처임을 확인한 순간 사색이 되었다. 체셔가 내색은 않았지만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상처는 꽤 크고 아파보였다. '어떡하지?' 하고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체셔는 아픈 부위를 자꾸만 핥았고 상처는 점점 더 커졌다.

결국 동물병원으로 달려가 상처를 봉합했고 체셔는 중성화 수술 후 5년 만에 수술을 하고 깔때기를 착용했다. 타고나길 건강하고 튼튼한 체셔이기에 중성화 및 예방접종과 미용을 제외하고 동물병원을 가본 적이 딱 두 번뿐이었는데, 우습게도 그 두 번 모두 반려인의 서툰 행동이 그 원인이 되었다. 어릴 때는 수술 후에도 멋모르고 잘 먹고 잘 놀았던 체셔였지만 이미 잦은 미용 마취로 인해 간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기에 수술을 위해 놓았던 진정제에도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체셔는 정신을 차렸고 며칠간의 항생제 투약과 깔때기 생활을 거쳐 다시 생기 있는 고양이로 돌아왔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계속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고양이의 유연한 신체 때문에 고양이를 미용할 때 마취는 거의 필수조건처럼 따라붙는다.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강아지와 달리 언제 어떻게 몸을 돌릴지 모르는 위험성 때문에 안전하게 마취를 하고 미용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용할 때마다 하게 되는 마취 때문에 나처럼 미용을 꺼리는 반려인들도 늘었고 그로 인해 무마취 미용을 해준다는 곳도 생겼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금전적인 부분의 상승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커지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집에서 직접 미용을 하는 반려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제법 전문가처럼 예쁘게 잘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쉽게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나는 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르고 달래가며 미용을 할 자신도 없었지만, 미용을 한다손 치더라도 잘 자를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마취미용을 중단한 이후부터는 단지 털이 잘 뭉치는 부분이나 청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엉덩이 부분 털만 잘라주는 정도였는데, 그 과정에서 고양이의 피부는 굉장히 잘 늘어난다는 점을 망각했기에 체셔를 다치게 만든 것이었다.

꽤 시간이 흘러서 상처가 생겼던 부분은 이미 잘 아물었고 털도 다시 자라서 이젠 흉터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마취 미용을 중단하게 만들었던 약해진 체셔의 간도 다행히 이제는 괜찮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나는 여러 번 다치게 한 만큼 두 번의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여름을 대비한 자체 미용을 시작했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자르는 통에 자르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었건만 아직 배 쪽 털도 미처 다 자르지 못해 일명 '고속도로'가 나 있는 상태다. 그래도 체셔가 덜 더워하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자를 때마다 좀 귀찮아하기는 하지만 서툰 집사의 가위질에 믿고 몸을 맡겨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다. 이렇게 수년을 함께하면서도 아직도 서툰 반려인이라 때로는 미안해진다. 그래도 나의 첫 반려동물이 바로 체셔이기에 여태껏 크게 별 탈 생기지 않고 잘 지내온 것 같다. 체셔는 언제나 나에게 참 고맙고 든든한 내 옆자리 고양이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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