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난 정부의 통계 수치들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미래 인구 추계 통계와 소득 분배의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Gini's coefficient) 등이 논쟁의 핵심이다. 지난 2011년에 발표된 인구 추계 결과, 인구 감소 추정 시기가 2018년에서 갑자기 2030년으로 늦춰졌다. 이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건설업계의 주택 사업에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것. 또 지니계수를 선거 이후에 발표,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도록 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럴듯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발표된 자료대로라면 아파트 가격의 거품은 꺼지지 않았어야 하고, 빈부 격차 때문에 빚어지는 양극화라는 말도 많이 숙져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으니 속고 있다는 말이 넘친다. 통계의 숨겨진 이면을 명쾌하게 빗대어 유명해진 경구가 있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이 말은 통계 수치를 그대로 믿는 어리석음을 경고한 것으로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에 실린 벤저민 디스레일의 시사적 명언이다.
숫자 해석에 대한 이러한 해학적인 비유가 그럴싸하게 와 닿는 사례가 있다. 오래전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질문지를 들고 방문 조사했다. "당신 집에서는 어떤 잡지를 구독하고 있습니까?" 조사 결과 대다수 사람이 지식층이 읽는 '하퍼즈'를 구독, 대중 오락 잡지 '트루 스토리'를 구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당시 트루 스토리의 발행 부수는 수백만 부인 데 반해 하퍼즈는 수십만 부에 불과했다. 얼핏 보면 표본조사 설계자가 응답자를 잘못 선정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경우에 얻을 수 있는 그럴듯한 결론은 응답자 중 상당수가 거짓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즉 대다수 사람이 신사인 체하며 거짓 답변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사례는 왜곡된 응답에 의한 잘못된 통계의 한 예에 불과하다. 하지만 잘못 얻어진 표본에서 나온 결론을 사람들이 그대로 믿고 살아간다는 현실은 아찔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조사 자료 발표를 무작정 믿는 경향 때문에 조작의 유혹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현실이다.
어차피 샘플조사는 응답자를 설계하는 첫 단계부터 오류를 동반할 개연성을 가진다. 과장이지만 여론조사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응답자가 있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확률만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신사인 체한 거짓 응답자만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의도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지만 더 나쁜 건 입맛에 따라 공개 여부가 결정되거나 엉뚱한 시점에서 발표되어 사실상 여론 조작용으로 이용될 때이다. 짐작건대 실업률, 소득 불평등률 등은 어느 정부에서나 조작 유혹이 높은 항목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니계수에 고소득자 소득이 누락되고, 금값이 올랐다고 물가지수 품목에서 뺐다면 지난 정부의 통계가 '새빨간 거짓말'로 희화화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돗물 값 인상도 4대강 사업과 연관해 의구심을 갖게 되고, 국민의 고통 분담으로 전가되는 절전 시책도 한전의 거짓 통계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신뢰가 생명인 통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국민을 봉으로 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외쳐봐야 공허한 소리가 될 것이다.
통계는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풍향계이다. 품질 관리가 안 된 통계가 사회에 떠돌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엉터리 통계로 추진되는 정책은 고스란히 부실한 국가 운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권 유지를 위해 통계가 조작되면 시간이 흐른 뒤 국민들의 부담으로 메워야 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그런데 정보 왜곡을 바로잡아야 할 정부부터가 왜곡한다면? 말문이 막히는 일이다. 이런 경우 어느 사회통계학자의 충고를 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지를 살펴보라. 통계는 숫자라는 마술로 사람들의 상식을 마비시키는 까닭에". 숫자에 의존하려는 경향에서 벗어나라는 뜻 아닌가 싶다.
이권희/문화산업전문기업(주)ATBT 대표 lgh@atb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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