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은퇴일기] 소나기처럼

장마철입니다. 장마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거센 비 소리가 생각나십니까. 아니면 맛있는 전을 곁들인 막걸리 한 잔이 혹은 영화나 음악의 멋진 한 장면이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장마철 제일은 소나기 일 것 입니다.

소나기 하면 생각나는 게 있지요. 맞습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입니다. 국어교과서를 받아들고 설레며 읽던 기억은 아스라한 청춘의 오래된 페이지입니다. 살짝 가슴이 아려옵니다. 어떤 시인은 소나기하면 논가에서 환하게 웃는 아버지가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소나기의 압권은 반전 일 것입니다. 여름의 무덥고 칙칙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그 상쾌함 말입니다. 쏴~ 하며 쏟아지는 그 소리는 모든 걱정 근심을 잊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지요. 참으로 소나기는 여름이 주는 시원한 조크이며 참신한 위트입니다.

한자로 소나기는 취우(驟雨)라는 아주 운치 있는 이름을 갖고 있지요.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를 의미합니다. 그 뜻처럼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소나기도 그치게 돼있습니다. 그리고는 거짓말같이 종종 아름다운 무지개를 선물하기도 하지요.

인생을 살다보면 소나기처럼 좋은 일이 한꺼번에 쏟아질 수도 있고 또 나쁜 일들이 소나기처럼 몰려와 퍼부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 불행의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또한 곧 그칠 것임을 믿었으면 합니다.

은퇴는 소나기와 참으로 닮았습니다. 소나기의 특징과 흡사한 것이 많지요. 갑자기 쏟아지고 갑자기 거세지며 갑자기 멈추는 소나기의 성격처럼 은퇴도 준비 없이 갑자기 닥치고 그 폭풍은 마음속에서 거세게 소용돌이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역시 멈춘다는 사실입니다. 소나기처럼 밀려오는 은퇴의 불안 좌절 배신의 그림자도 언젠가 그칩니다. 그리고 소나기의 끝에 여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시원함과 꿈같은 무지개가 펼쳐지듯이, 은퇴자에게도 또 다른 희망과 꿈이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지금 은퇴로 막막하거나 혹은 아직 분노와 좌절감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시원한 소나기 한줄기에 그런 감정을 날려버렸으면 합니다.

누가 압니까. 은퇴 후 내 인생에 최고의 무지개가 뜰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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