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말이 많은 아이였다. 그래서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했었다. 하루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북한이 침략을 했으면 '북침'이라고 해야지, 왜 '남침'이라고 해요?" 그러자 선생님은 당황하시면서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으니까 '남침'이지"라고 대답하셨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으면 '북남침'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마라, '북침'이라는 말 자체를 꺼내지 마라, 그냥 '남침'으로 외워라" 하시면서 화를 내셨다. 그 시절의 교육은 그런 식이었다.
얼마 전 대통령께서 청소년들의 69%가 6'25를 '북침'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개탄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그러자 학교 현장에 대해 잘 모르면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소년들의 안보의식에 충격을 받았다, 이게 다 전교조의 이념 교육 때문이다,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솔직히 나는 진짜로 우리 청소년의 69%가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의 의식에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학교를 얼마나 모르면, 혹은 얼마나 상황 분석 능력이 떨어지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문제는 '남침'이라는 용어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이다.(대통령의 의중은 역사 교육 시간이 적어 학생들이 그 용어를 접하지 못한 데 대한 문제제기였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 애초에 이 용어가 침략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잘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는 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일반적인 한문 어순에서는 명사인 남(南)과 동사인 침(侵)이 순서대로 있으면 주어+서술어의 관계가 되어 '남한이 침략하다'가 된다. 만약 '남한을 침략하다'와 같이 목적어+서술어로 되어 있는 경우는 서술어가 앞으로 가서 '침남'(侵南)이 되어야 한다. 한자가 연속될 때는 어순에 따라 달리 해석이 된다. 예로 화개(花開)라고 하면 '꽃이 피다'로 해석이 되지만, 개화(開花)라고 하면 '꽃을 피우다'와 같은 서술어+목적어 구조나 '핀 꽃'과 같이 수식어+피수식어 구조로 파악된다.
요즘의 교육은 내가 배웠던 시절하고는 달라서 일방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새로운 상황에 기존의 규칙을 적용해 보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일반적인 언어 규칙을 이용하여 남침(南侵)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파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방부에서는 이런 혼란을 줄이고, 침략의 주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장병 교육용 자료로 '북한의 남침'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좀 길긴 하지만 현재로는 혼란을 줄이면서도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으로 보인다. 기왕에 논의가 된 이상 학교에서도 굳이 '남침'이라는 오해를 살 만한 표현 대신 그냥 풀어서 '북한의 침략'이나 '대남 침략'과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능인고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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