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바람에 지지 않고-미야자와 겐지(일본. 1896~1933)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고

절대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미소 지으며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생각지 말고

잘 보고 들어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속 그늘에

조그만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찾아가서 간호해 주고

서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을 대신 져 주고

남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에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여름엔 허둥대며 걷고

누구한테나 바보라 불려지고

칭찬도 듣지 말고

괴롬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권정생 산문집 『빌뱅이 언덕』(창비, 2012, 권정생 옮김)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는 권정생이 영향을 받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세상 모든 만물은 동등하며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서로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고 믿는 마음이 서로 닮았다. 사는 동안 세상 만물들에게 다만 인간일 수밖에 없는 처지를 늘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살면 이런 모습이 된다. 둘 다 그렇게 살다 갔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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