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한민족 디아스포라(민족 분산), 국력의 외연

민족분산 또는 집단이주를 뜻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는 원래 BC 6세기 유다 왕국이 망하면서 바빌론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였던 유태인들을 가리켜 사용되었다. 역사에서 패전국민이 승전국의 노예로 전락한 예가 수없이 많을 테지만 유독 2천600년 전 바빌론에서 포로로 지냈던 유태인을 지칭했던 디아스포라의 의미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로 집단이주하여 사는 사람들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진화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빌론의 유태인들은 현지에서 동화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오히려 번성했고, 훗날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유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유엔 인구국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세계 인구의 3%에 해당하는 2억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75개 국가에 720만 명의 해외동포가 있다. 물론 이 통계에는 이주 1세대의 후손들이 대부분이긴 하나 국내 인구(남북한 전체)의 10%에 달하는 우리 동포가 전 세계 5대양 6대주에 퍼져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한민족은 중국인, 유태인 못지않은 세계적인 디아스포라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각지로 이주한 역사적 배경이 시대별로 다르고 현지 문화와 사정도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세계 각지의 재외동포사회를 하나로 묶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같은 핏줄의 한민족이기에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첫째가 재외동포들은 어는 곳에서든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현지 다른 이민사회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둘째로 한민족 특유의 교육열과 우수함으로 다음 세대의 현지 주류사회 진출률이 다른 소수민족보다 높다. 셋째로 강한 뿌리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헌팅턴(S. Huntington)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념의 대립이 끝나면서 문화, 민족의 개념이 중요시되는 시대조류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은 현지에서 잘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현지화 정책에 초점이 두어졌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재외동포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한 우리 정부와 사회의 인식이 현저히 바뀌고 있다. 세계화 진행으로 국경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민족 간 연대는 강화되고 있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국경을 초월한 민족 네트워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중국, 이스라엘, 인도,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많은 나라들도 해외 거주 및 이주자들을 자국의 경제발전 전략에 포함하고 있다. 특히 중국 경제의 급부상이 4천만 명이 넘는 화교경제권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미국과 중국 방문 시 현지동포들과의 대화에서 말했듯이 우리 정부는 우수한 해외 인재들이 국가 경제에 참여하고 기여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산업과 기술 간의 융합이 창조경제의 주요한 요소이듯이 해외에서 교육받고 우리와 다른 문화를 익힌 글로벌 창의 인재들이 우리 경제에 접목된다면 경제 활성화에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뿐만 아니다. 수천을 넘는 세계 곳곳의 한상(韓商)들이 수출입, 투자, 합작, 청년인력의 해외 취업 등 국가의 경제영토 확장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은 무한하다. 또한 미국 의회의 일본 위안부 강제동원 비난 결의안 통과에 재미 한인단체의 막후활동이 있었다. 이러한 재외동포의 외교적 지원은 한반도 안정과 미래 남북통일 과정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민족적 뿌리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간적, 문화적으로 떨어져 있는 세계 각지의 한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을 수 없다. 한민족공동체가 건설되고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 정부는 복수국적 허용 확대, 재외국민용 별도의 주민등록증 발급 등을 검토하고 있고 동포재단은 한인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과 재외동포 차세대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각종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재외동포들과 함께하는 한민족공동체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도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가져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국력의 외연 그 끝에 한민족 디아스포라가 있음을 잊지 말자.

조규형/재외동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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