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푼 한시] 送人(송인)/ 정지상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이 마음은

한국인의 가슴 속에는 한이 서려 있다. 수많은 침략의 시달림 때문일까. 아리랑과 흰옷이 상징적으로 주는 민족성 때문이었을까. 여인들이 느끼는 한은 더 했다. 참아야 하고, 쓰린 가슴을 부여안아야 했다.

이런 한을 더욱 부채질했던 것은 바로 이별이다. 그래서 이별과 한은 상관관계가 크다. 아래 한시도 이별의 정한(情恨)을 나타내고 있는데, 흘린 눈물이 대동강 물을 더한다는 구절에 두 무릎 치면서 아래와 같이 번안해 본다.

비 개인 긴 강둑엔 풀빛도 물이 들고

남포로 임을 보낸 노랫가락 구슬픈데

대동강 마르지 않군요, 더해가는 이별 눈물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우헐장제초색다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대동강수하시진 별루년년첨록파

【한자와 어구】

雨歇: 비가 쉬다/ 長堤: 기다란 둑에/ 草色多: 풀빛이 진하다/ 送君南浦: 남편을 남포로 보내다, 南浦는 대동강 가에 있음/ 動悲歌: 노랫가락이 구슬프다/ 大同江水: 대동강물/ 何時盡: 어느 때나 마를까/ 別淚: 이별의 눈물/ 年年: 해마다/ 添綠波: 푸른 물결을 더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이 마음은'으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1392)으로 고려의 문신이다. 그의 시는 한국인의 서정성을 대표하는 금지옥엽으로 대표된다. 정지상은 역학'노장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서화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비 개인 긴 강둑 위에 풀빛이 진한데/ 남포로 임을 보낸 노랫가락 구슬프구나/ 대동강의 물은 어느 때나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 더해 가는데'라는 시상이다.

이 시는 서정시를 대표한 시이자 이별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시로 평가된다. 우리의 정서에 맞고 한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시로 여겨지면서 이른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되어온 시다.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임은 갔지만 나는 아직 임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만해(卍海)의 시 구절까지도 연상하게 된다.

시인은 '비 개인 기다란 강둑엔 풀빛도 곱게 물이 들고'라며 시상(詩想)을 일으키면서 남포로 임을 보내면서 한스럽게 불렀던 노랫가락이 잔잔하게 들린다고 했다. 검푸르게 흐르는 저 대동강 물이 바닥을 드러내어 말라야만 임이 그 바닥 길을 밟고 돌아올 수 있을 터인데 임을 그리면서 흘린 눈물이 해마다 더해만 가고 있으니 더욱 한탄스럽다고 노래한다.

필자는 대동강 물이 마를 날이 없겠다는 자기 판단으로, 그러기 때문에 임을 만날 수가 없겠다는 한스러움으로 종장(혹은 결구)을 맺고 있는 기발한 시상에 감동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시적 감흥일 것이다.

정지상=초명은 지원(之元), 호는 남호(南湖)였으며 서경에서 태어났다. 고려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그가 쓴 서정시는 당시 시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시재(詩才)는 이미 5살 때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乙자를 강물에 썼는고'(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올 만큼 뛰어났다. 작품으로 '서도'(西都), '송인'(送人), '장원정'(長源亭), '개성사팔척방'(開聖寺八尺房), '제변산소래'(題邊山蘇來寺) 등 몇 편이 동문선, 파한집 등에 실려 전한다.

그는 한편으로는 시대의 풍운아이기도 했다. 1114년 문과에 급제, 1127년 좌정언(左正言)으로서 권신 척준경이 대궐을 범한 죄를 들어 그를 탄핵, 척준경과 그의 동조자들이 유배되도록 했다. 묘청(妙淸)의 음양비술을 깊이 믿어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해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개경 세력과 대립했으며, 1135년 묘청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적극 가담했다가 토벌군에 패해 개경에서 참살됐다. 김부식이 그의 문학적 재능을 시기하여 죽였다는 말도 있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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