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풀 뜯는 고양이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 '방랑 고아 라스무스'의 주인공 라스무스는 멋진 부모와 고양이를 가지는 게 소원이었다. 어떻게 보면 꿈과 같은 소원이지만 꼬마 방랑자에게는 너무나 간절하고 현실적인 바람이었다. 나그네 오스카와 함께 유랑하는 도중에 함께 자신이 꿈꾸는 고양이에 관한 노래를 만들며 고양이가 진짜 우유와 꽁치를 잘 먹느냐는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의 끝엔 라스무스가 오스카와 진정한 가족이 되며 정말로 우유와 꽁치를 잘 먹는 아기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

이야기 속 고양이가 아닌 내 바로 옆 현실의 고양이는 라스무스처럼 고민할 필요 없이 생선과 우유 모두 좋아한다. 우리가 먹는 우유는 많이 주면 설사나 복통을 유발할 수 있기에 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우유를 마시고 난 빈 컵에 냄새를 맡은 후 꼭 얼굴을 들이밀어 맛보려고 한다. 생선은 오히려 없어서 못 먹는다고 할 정도로 고양이가 늘 학수고대하는 음식이다.

이렇게 나는 라스무스와는 다르게 예전부터 고양이가 생선과 우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 라스무스와 내가 동시에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면 바로 풀과 고양이의 상관관계였다. 고양이가 풀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기에 '캣닢'(catnip), '캣 그래스'(cat grass)라는 이름들은 체셔를 키우기 전까지 전혀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어느 날 사료를 주문한 곳에서 사은품으로 왔던 캣닢이 담겨 있던 통을 체셔가 엎고 그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고양이가 좋아서 못 견디는 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박하라는 허브의 일종인 캣닢은 일명 '고양이 마약'으로 불릴 정도로 고양이를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어준다. 주로 호밀이나 귀리, 보리 등을 일컫는 '캣 그래스'는 고양이의 헤어볼 관리와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해 준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호기심에 캣 그래스를 사서 화분에 뿌려놓고 자라기가 무섭게 체셔가 관심을 보이며 쏙쏙 뽑아 먹었고, 캣닢이 들어간 작은 쿠션은 끌어안고 뒹굴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게 좋아했다.

체셔가 좋아하는 풀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먹으려고 다듬는 중인 미나리와 집에서 키우는 토마토 잎, 그리고 심지어 돼지감자나 껍질을 까고 있는 더덕까지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곤 했다. 특히 토마토 잎 같은 경우에는 줄기를 뜯어 입에 가져다주면 마치 기린과 같은 채식 동물이 풀을 받아먹듯이 얼굴을 내밀어 뜯어먹곤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종종 토마토 잎을 먹게 주었다.

그런데 토마토 잎을 잔뜩 먹이고 난 최근에야 토마토 잎이 고양이에게 '결막염'이나 '피부염'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양이 많지 않았던지 체셔에겐 결막염이나 피부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젠 체셔에게 토마토 잎을 주지 않지만,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과자처럼 몸에 조금 해롭긴 하지만 나름 체셔에겐 심심풀이 별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속 라스무스가 그렇게 바라고 꿈꿨던 고양이를 만났듯 나 역시 줄곧 내가 꿈꿔왔던 고양이 체셔와 앨리샤와 함께 있다. 물론, 내 현실 속 고양이는 우유와 생선뿐만 아니라 내가 전혀 상상도 못 하던 여러 종류의 풀을 즐겨 먹는 고양이지만 말이다. 실은 너무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였기에 라스무스의 고양이가 좋아하는 생선이 꽁치였는지 고등어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렸던 내게 그 이야기 속 꼬마에 불과한 라스무스가 부르던 노래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자신의 소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한 굉장히 달콤한 노래로 머릿속과 귓가에 담겼던 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직도 고양이를 보면 떠오르는 그 대목은, 어쩌면 그 이야기로 인해 내 머릿속 고양이가 '긍정'과 '희망'의 인상으로 각인되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고양이와 내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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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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