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검열이 뒤따라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아직도 그런 시대를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그런 시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의 검열 방식과는 다른 형태가 되겠지만 현재까지도 검열의 그림자는 문화와 떼기 힘든 관계에 놓여 있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문화이든 관계없이 그 뒤에는 검열이란 이름의 그림자가 뒤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분명한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더욱 은밀한 형태 혹은 그 시작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검열이 생겨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문화 검열은 특히 대중문화와 문화예술 등에서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검열의 주체가 누구인지 흔적도 남지 않는 검열 때문에 문화계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느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문화 생산자가 될 수 있다. 반면에 어느 누구라도 문화 검열자가 될 수도 있다. 아무런 원칙이나 규정 없이 '이건 뭐 때문에 문제가 있어' '이건 학생이 보기엔 적절하지 않아' 등 오로지 자신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즉흥적이고 감성적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비평가의 날카로운 눈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일 뿐이다. 물론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당연히 자신의 세계관이 투영된 개인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적인 판단에서 시작해 개인적인 수용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판단을 기준으로 강제한다면 비평이 아니라 검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의 틀에 심각하게 반하는 것이 아니거나 해당 문화를 접하게 되는 사람들의 나이 등에 일정 부분 제한을 두어 무차별적 노출을 제한한 것이라면 문화 생산자 혹은 예술가 등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물론 현재 그런 자율성은 충분히 주어져 있다. 하지만 그런 자율성을 바탕으로 생산된 문화를 소비하거나 수용할 여건을 만들지 않고 통제한다면, 생산의 자유는 의미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관객이 없는 공연은 소비자가 없는 생산품과 다를 바 없고, 이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비록 과거처럼 정치권력이 개입되어 검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들 하나 자본력이 개입된 검열은 오히려 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교육적인 목적의 검열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학생들이 접하게 되는 대중문화나 문화예술 분야는 항상 검열이 뒤따르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일정 부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검열에 일정한 기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이다.
최근에 필자가 그런 경우를 접해보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 가수들의 노출, 방송 드라마의 자극적인 내용 등에는 무뎌진 것인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혹은 전적으로 방송 규정의 원칙 등에 맡겨두었다가,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의상이나 대사, 작품의 줄거리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본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가 국가나, 단체 등의 제도적 검열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특정 사람들의 경우를 말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서 해당 문화의 소비를 유도하거나 막을 수 있다면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그런 개인이 학교 선생님, 대학교수 등의 위치에 있다면 학생들에게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는 학생들에게 질 높고 좋은 문화 상품을 소개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한 개인의 판단으로 학생들의 창의적인 소비를 막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교육적인 목적을 바탕으로 하는 검열이 오히려 더 비교육적인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은 하겠지만 결국 이러한 형태의 검열은 이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검열일 뿐이며, 일정한 기준도 원칙도 없이 자신의 영역 안에서 행하는 통제에 지나지 않는다. 통제에 익숙한 사람들은 결코 자율성도, 창의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과연 무엇이 더 교육적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희철/극작가, art-pl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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