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에 오합혜를 삼고…'
때늦은 춘설(春雪)이 쏟아지더니 바로 초여름의 무더위로 연결됐다. 이런 이상기후 현상도 장맛비에는 고개를 숙인다.
'장마'라는 말의 어원은 다양하고 그 뜻 또한 재미있다. 옛날 함경도 갑산(甲山) 처녀들은 장마가 짧게 끝나면 마(麻'삼)의 대를 잡고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장마가 짧으면 마가 덜 자라서 마 농사가 흉작이 되는데, 삼베 몇 필에 오랑캐에 팔려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녀들은 울면서 "마야, 어서 자라다오"라고 애원했는데, 여기서 '장마'(張麻)란 말이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문헌상으로는 조선왕조실록에 '림우'(霖雨)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데 한자 '림'(霖)은 '댱마 림'이라 풀이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 중종 22년에 간행된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오란비 림'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장마의 어원인 '댱마'의 옛말은 순수 우리말 '오란비'일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원래는 '오란비'라 했었는데, '오랜'의 한자어인 '댱'(長)과 '물'(水)의 옛말인 '마ㅎ'를 합성한 '댱마ㅎ'로 표현되다가 '쟝마' '장마'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윤선도의 시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에도 장마를 '댱마ㅎ'로 적고 있다. 따라서 장마는 순한글도 한자어도 아닌 한글과 한자의 합성어인 셈이다.
그런데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모두 장마를 '매우'(梅雨)라고 하는데, 매실이 익을 무렵에 내리는 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 장마와 연관된 불가(佛家)의 짚신이 있는데, 바로 '오합혜'(五合鞋)다. '바보가 장마에 짚신 신는다'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장마가 걷히면 탁발을 하는 스님들은 오합혜 짚신을 메고 다니며 시주하는 집집마다 식구 수만큼 나눠줬다.
오합혜는 여느 짚신처럼 촘촘하게 삼질 않고 느슨하게 삼은 것이 특징이었다. 장마가 끝나면 초목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벌레 같은 미물 생명들도 번성하게 된다.
이같이 부쩍 늘어나 활동하는 벌레들을 밟아 죽이지 않기 위한 불살생계(不殺生戒)의 짚신이 오합혜였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네 가슴에도 오합혜 같은 마음의 짚신을 한 켤레쯤 삼을 일이다.
이렇듯 장마는 지루하고 눅눅한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는 차 한잔하기에 좋지 않은가. 책 읽기에도 좋고, 또한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기에도 좋다.
날씨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어도 기분은 마음 따라 바꿀 수 있는 것.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다. 지혜로운 사람은 날씨에 맞추어 자신을 적응시킬 줄 아나니….
"다시 장맛비가 비슬산을 한바탕 훑고 가는데, 산사를 휘감은 대숲에는 빗소리만 가득 내려앉습니다. 이제 마음의 짚신을 삼아야 할 때입니다."
동화사 부주지'청도 용천사 주지 지거 스님, yong1004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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