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극 같은 '80대 역사극 작가' 삶…「역사가 지식이다」

역사가 지식이다/신봉승 지음/선 펴냄

신봉승. TV 사극에서 그의 이름을 뺄 수는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극 극작가다.

신봉승이 80세를 맞아 격동의 현대사 80년을 회고하는 자전적 에세이집 '역사가 지식이다'를 낸 것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열세 살 까까머리 소년으로 8'15의 감격을 맞았고, 스무 살에 6'25의 참변을 경험했으며, 스물일곱에 5'16을 겪으면서 문필의 길로 들어섰다. 20대는 시인이 되려는 꿈을 안고 살았고, 30대는 극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를 만큼 우쭐거렸다. 40대로 접어들고서야 TV드라마를 쓰는 것으로 생업을 삼는가 싶었는데, 역사드라마에 눈 뜨면서 50대를 맞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역사를 가까이하였던 인연으로 내 지식의 뿌리가 역사의 토양에서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 또 그 지식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잔가지들까지 모두가 내 지식의 근원임이 확실하다면 역사가 주는 교훈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몸으로 익히면서 살아온 80년 세월"이라고 했다. 책 제목이 '역사가 지식이다'라고 나온 이유를 알 만하다.

그의 이름이 붙은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들만 보자.

데뷔작은 1962년 김진규 김지미 주연의 영화 '두고 온 산하'다. 그 이듬해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청춘교실'도 그의 히트작이다. 1965년 신영균과 고은아가 주연한 '갯마을'도 성공을 거둔다. 이어 대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제작해 전 국민을 눈물바다로 몰아넣었다. 1967년에는 김희갑과 황정순 콤비의 '팔도강산'을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를 한국 최고의 사극 작가로 만든 작품은 연산군의 일대기를 다룬 '사모곡'이었다. 김세윤과 고은아 주연. 주제가는 이미자가 불렀다. 이 작품으로 역사드라마 작가로 불리게 된 신봉승은 역사드라마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는 '조선여인 5백 년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다. 이들 작품이 방영되는 시간에는 주부들이 TV 앞에 몰리는 바람에 수돗물 사용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후에도 신봉승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땅에 주자학의 씨를 뿌리고 그것이 퇴계학으로 발전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강항의 '간양록'을 만든다. 그의 일본에 대한 관심은 일본 근대화의 기점인 명치유신에 이르고 명치유신의 주역들을 찾아가는 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신봉승은 1980년 신군부 출범 이후 거대 방송사로 거듭난 KBS를 통해 대원군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풍운'을 만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의 필생의 역작은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백 년'이다. 1화가 1983년 3월 시작한 '추동궁마마'다. 그리고 11화 대원군을 마치는 1990년 12월까지 장장 7년의 시간을 이곳에 바친다. 그 결과물이 같은 이름의 대하소설 48권이다.

그렇게 잘 나가던 신봉승은 2009년 4월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당시 '아, 이렇게 가는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수술 불가 부위라는 판정과 함께 남은 기간 1년이라는 통보를 가족들이 받았단다. 항암주사를 맞는 통원치료에 들어갔지만 그 외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내게 선고된 폐암의 문제가 하늘의 소관이라면 전전한 일상에 매달리는 것이 최선의 치료 방법일 뿐이며 내가 할 일은 따로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단다. 그는 당시 자신의 암에 대한 생각이 깊으면 깊을수록 암세포는 기승을 부리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러고도 '역사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 등을 출간했으며 실록역사소설 '이동인의 나라' 등 쉼없는 저술활동을 이어나갔다. 그가 쓴 책은 150여 권에 이른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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