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이승하(1960~)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연이어 피어난다
네 가족 피눈물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진한 향기를 퍼뜨린다
조금만 더 아프면 오늘이 간단 말인가
조금만 더 참으면 내일이 온단 말인가
그 자리에서 네가 아픔 참고 있었기에
산 것들 저렇듯 낱낱이
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시집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문학사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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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만 해도 우리 시는 사람살이의 고달픈 시간을 밤이니 겨울이니 거리낌도 없이 끌어다가 썼다. 새벽이 오면, 아침이 오면, 봄날이 오면 어찌 되겠지 하는 희망으로 도배를 하며 아픈 시간을 견딘다고 노래했다.
어찌 된 일인지 요즘 시에는 이런 비유를 찾기 어렵다. 게다가 난해하기까지 하다. 밥술 좀 뜬다고, 생각한 대로 말 좀 한다고, 이만하면 되지 않았냐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너무 낡은 것이어서?
아니다. 나는 대체로 젊은 시인들의 시가 어려워진 이유 중 하나를 자연과 멀어진 것에서 찾고 있다. 대자연은 끊임없이 순환을 하면서 생명을 조화롭게 굴려 가는데 이들은 개체 안에 갇혀 순환에 저항하고 있다. 세대 간, 계층 간의 관계 순환이 어려운 사회 구조와 문명의 이기 탓이다. 개별, 개체, 개인으로 고립을 자초하는 삶의 방식이 관계 순환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난해는 거기에 저항하는 싸움의 방식이다. 스스로를 담장 안에, 독방 안에 감금한 채 동맥경화 같은 병든 현실을 병든 언어로 싸우고 있는 그들만의 '손자병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 아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언젠가는 알아듣는 말의 힘을 깨닫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는다. 순환에는 그들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치열하게 어려워지고 나면 넘어설 것이다. 우선은 더 어려워지기를! 그들도 언젠가는 벌판에 서서 대자연이 전하는 말을 받아 적을 것이다. 삶도 그렇지만 시도 순환-소통-해야 숨통이 트이지 않겠나.
벌판에 서서 꽃 한 송이만 유심히 봐도 이런 시가 나온다. 사실 뭔 말이 더 필요한가.
안상학<시인·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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